파월의 9월 금리 인하 시사가 불길한 까닭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이 9월 기준금리 인하를 시사하는 발언을 하면서 자산시장 참여자들은 기대가 많다. 하지만 연준이 기준금리 인하를 적극적으로 고민한다는 건 물가 보다는 경기가 더 염려될 만큼 경기가 식는 속도가 빠르다는 의미로 환호할 일이 아니다. 과거의 경험을 봐도 경기 위축은 금리를 내릴 때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9월 기준금리 인하를 강력히 시사한 파월 의장
파월 의장은 지난 10일 하원에서 “인플레이션 완화만 보는 게 아니다”라며 “노동시장 상황도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파월이 이런 식으로 말한 건 인플레이션이 고착된 이래 최초다.
이미 연준이 참조하는 물가 지표는 연 2.6%로 내려갔고, 한때 과열됐던 노동시장은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으로 식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또한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도 17일 “기준금리 인하가 타당해지는 시기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노동 시장이 ‘이상적 상태’이지만 이를 유지하기 위한 연준의 노력이 필요하고, 실업률 상승 위험이 예전보다 크다”고 말했다. 월러 이사는 연준 내에서 온건한 ‘매파(통화긴축 선호)’ 성향으로 평가받는다.
한편 메리 데일리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도 노동시장 상황이 즉시 개입해야 할 만큼 심각하진 않지만, 상황이 빠르게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투자자들이 이제 연준 금리인하를 확실시한다고 전했다.
본드블록스 투자 전략가 조앤 비앙코는 로이터통신에 “시장에선 인플레이션이 계속 올바른 방향으로 가면 9월에 연준이 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경기침체에 대해 고민하는 파월 의장과 옐런 장관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9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 상원에서 열린 은행·주택·도시문제위원회 청문회에서 미국의 경제 전망에 대해 “직면한 위험은 물가상승 하나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미 고용 시장은 그동안 여러 정책으로 인해 상당한 수준으로 진정됐다”라며 “지금은 노동 시장이 경제에 광범위한 물가상승 압력을 주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파월의 발언을 뒷받침하듯 현재 미 노동 시장은 실업자가 늘어나고 구직 규모가 감소하면서 물가를 밀어 올릴 힘이 떨어진 상태다. 지난 5일 발표된 미국의 6월 비농업 일자리 증가량은 20만6000개로 직전 1년 평균 증가폭(22만명)에 비하면 크게 줄어들었다. 6월 실업률도 5월(4%)보다 상승한 4.1%를 기록했다. 하나의 경제에서 실업률이 4% 미만으로 내려가는 상황은 모든 구직자가 직장을 잡은 ‘완전 고용’ 상태로 간주된다.
주목할 대목은 ‘물가’에 집중돼 있던 파월의 관심이 이젠 ‘경기 침체’로 이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파월은 청문회에 앞서 제출한 서면 답변에서 “긴축 정책을 너무 늦게 또는 너무 조금 완화할 경우 경제활동과 고용을 지나치게 약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청문회에서 “오랫동안 다뤘던 위기는 물가상승률을 목표만큼 낮추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면서 “지금은 노동 시장이 너무 침체되는 상황이 물가 문제와 버금가는 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고용시장 둔화와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는 파월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파월 청문회 당일 미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청문회에 출석, “물가상승률은 시간이 지나면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임대료 및 거주 비용은 원하는 수치보다는 계속 높을 것”이라면서도 “노동 시장이 처음에는 매우 여유가 없었지만 지금은 강력하면서도 물가상승에 미치는 압력이 전보다 줄었다. 물가상승률은 내려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준금리 인하는 경기침체의 전조일 수 있어
미 경제 수장이라 할 파월과 옐런의 발언들이 함의하는 바는 명확하다. 이들은 긴축적 통화정책으로 물가와의 전쟁에선 어느 정도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하지만 이젠 경기침체를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경제정책이 명암이 있듯 통화정책도 그러하다.
최근 WSJ 조사에서 이코노미스트들은 내년에 경기침체가 올 확률을 28%로 봤다. 만만치 않은 확률인 것이다. 기준금리 인하로 자산시장에 훈풍이 불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경기침체의 냉기가 그 훈풍 보다 강력할지도 모른다. 그걸 누가 알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