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성장률의 늪’…성적도 꼴찌, 전망도 잿빛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우리 경제가 정말 사면초가 상태에 빠졌다. 받아든 성적표도 최악이고, 전망도 온통 잿빛이다. 1분기 성장률은 역성장을 기록하면서 주요 19개국 중 꼴찌로 떨어졌다. 주요 해외투자은행들은 앞다퉈 한국의 성장률을 0%대로 끌어내리고 있다. 외환보유액도 세계 10위로 밀리며 4000억 달러 방어가 위태로워지고 있다. 조기 대선을 통해 구성되는 새 정부가 수출과 내수 양쪽에서 특단의 활로를 만들어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충격과 공포…1분기 경제성장률 주요 19개국 중 최하위
1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0.246%로, 지금까지 1분기 성장률을 발표한 19개 나라 가운데 가장 낮았다. 19개국에는 18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비회원국으로는 유일하게 중국이 포함됐다.
1분기 성장률 1위는 아일랜드(3.219%)였고, 중국(1.2%)·인도네시아(1.124%)가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와 경제 규모(GDP)가 비슷한 스페인도 0.568%의 성장률로 4위에 올랐다.
경제 규모가 한국보다 큰 캐나다(0.4%), 이탈리아(0.26%), 독일(0.211%), 프랑스(0.127%) 모두 플러스 성장을 기록했다. 세계 1위 경제 대국이자 자국 관세 정책 혼란에 가장 직접적 타격을 입은 미국(-0.069%)도 역성장 정도가 한국과 비교하면 미미했다.
주요국 가운데 일본과 영국만이 아직 공식 1분기 성장률을 공개하지 않았는데, 이들의 성적도 우리나라보다 나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블룸버그가 최근 조사한 주요 기관의 국가별 성장률 전망치 컨센서스(평균)를 보면, 1분기 일본과 영국의 성장률은 각 -0.1%, 0.6%로 추정된다.
한국의 세계 하위권 성장 성적표는 벌써 네 분기, 즉 1년째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성장률은 지난해 1분기만 해도 시장 기대를 뛰어넘는 1.3%로 주요 37개국(콜롬비아·리투아니아 제외 36개 OECD 회원국+중국) 가운데 중국(1.5%)에 이어 6위 수준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2분기(-0.228%)에는 뒷걸음치면서 32위로 추락했고, 3분기(0.1%)에도 뚜렷한 반등에 실패하면서 26위에 그쳤다. 작년 4분기(0.066%·29위) 역시 0%대 성장률과 함께 29위로 더 주저앉았다.

앞다퉈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0%대로 낮추는 글로벌투자은행들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국내외 기관들의 눈길이 전례없이 싸늘해지고 있다. 내란과 탄핵 사태의 장기화와 트럼프발 관세전쟁의 여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올해 연간 경제성장률이 1%대 달성조차 여의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분출 중이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해외 주요 투자은행(IB) 8곳이 제시한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4월 말 평균 0.8%에 그쳤다. 지난 3월 말 평균 1.4%에서 불과 한 달 사이에 0.6%p나 하향 조정됐다. 바클리 1.4→0.9%, 뱅크오브아메리카(BOA) 1.5→0.8%, 씨티 1.2→0.6%, 골드만삭스 1.5→0.7%, JP모건 0.9→0.5%, HSBC 1.4→0.7%, 노무라 1.5→1.0%, UBS 1.9→1.0% 등으로 전망치를 낮췄다.
전체 8곳 중 6곳이 1% 미만 성장을 예상했고 1%를 넘는 성장률을 전망하는 IB는 단 1곳도 남지 않았다. 지난 2월 JP모건이 주요 IB 중 처음으로 0%대 성장 전망(0.9%)을 제시했을 때만 해도 한국 경제 수준을 지나치게 평가 절하한 것이라는 의견이 시장 일각에서 나왔지만 이제는 대세로 자리잡았다.

심지어 내년 전망도 암울하다. 주요 IB 8곳이 제시한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3월 말 평균 1.8%에서 4월 말 평균 1.6%로 0.2%p 낮아졌다. 이미 한은의 지난 2월 전망치(1.8%)를 밑돌기 시작한 것이다.
국내외 여러 기관으로 시야를 넓히더라도 성장 전망 하향이 뚜렷하다. 블룸버그가 이달 초 집계한 수치를 보면, 42개 국내외 기관이 제시한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1.31% 수준이다. 지난달 10일 조사 결과(1.41%)보다 0.1%p 낮아졌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한은도 오는 29일 발표하는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대폭 낮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외환보유액마저 한달 만에 50억 달러가 줄어
올해와 내년도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급전직 하 중인 가운데 외환보유액이 한 달 사이에 무려 50억 달러 가까이 줄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외환보유액 통계에 따르면 4월 말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4046억 7000만 달러로 전월말(4096억 6000만 달러) 대비 49억 9000만 달러나 줄었다. 지난해 4월(59억 9000만 달러) 이후 1년 만에 최대 폭 감소하면서 2020년 4월(4049억 8000만 달러) 이후 5년 만에 가장 적은 수준으로 내려갔다. 지난달 원·달러 환율이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인 1487.6원으로 뛰는 등 불안한 환율 탓에 국민연금과 외환스와프 거래가 급증한 것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주요국과의 순위를 비교할 수 있는 3월 말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 외환보유액 규모(4097억 달러)는 세계 10위 수준으로 나타났다. 2000년 관련 순위 집계 이후 9위 자리를 놓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은행은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장담하지만 이러다 자칫 외환보유액 4000억 달러 선이 무너지는 건 아닌지 염려된다.

경제살리기에 총력을 경주해야 할 새 정부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온통 잿빛이고 외환보유액도 줄어든다. 한국 경제는 급격히 빈사상태로 접어드는 중이다. 이제 기대할 수 있는 건 조기대선을 통해 구성될 새 정부다.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산적했지만 경제살리기가 으뜸 과제임은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국민총생산은 민간소비, 기업투자, 정부지출, 순수출로 구성된다. 경제가 활력을 찾기 위해서는 이 4개의 구성요소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새 정부는 해야 할 일도 자명하다.
우선 새 정부는 천문학적 재정적자를 각오하고 대대적인 정부지출을 단행해 민간소비를 진작해야 한다. 또한 지난한 일이겠지만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순수출을 늘려야 한다. 민간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순수출이 증가하면 기업투자는 저절로 늘기 마련이다. 국민총생산이 크게 증가하면 가계와 기업의 소득이 늘고 이는 세수 증가로 귀결된다. 재정적자를 겁낼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가계와 기업이 무너진 뒤에 일어서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가계와 기업이 무너지기 전에 새 정부는 움직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