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무제한 유동성 공급?…미국 흉내 내다 큰 코 다쳐



 

한은, 무제한 유동성 공급?…미국 흉내 내다 큰 코 다쳐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내란수괴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한달 간 한국은행이 매입한 환매조건부채권(RP) 총액이 47조 원을 넘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유동성 위기에 처한 2020년보다 많은 액수다. 지난해 연간 매입액은 한은이 RP 매입으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한 이래 최대였다. 대규모 RP 매입을 통한 유동성 공급은 한국은행이 글로벌 금융위기나 코로나 팬데믹 같은 극단적 위기상황에서 예외적으로 사용하는 극약처방이다. 하지만 이창용 총재를 수장으로 하는 한국은행은 마치 내일이 없다는 듯 RP 매입을 하고 있다. 이렇게 무분별한 RP 매입은 인플레이션 자극, 채권가격 시스템 붕괴, 환율 급등 등의 나쁜 결과를 낳기 마련이다. 사실상 글로벌 중앙은행이라 할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조차 양적 완화의 대가를 인플레이션의 습격이라는 형식으로 치르고 있다. 뱁새가 황새 흉내를 내다보면 수습 못할 낭패를 당할 수 있다.  


RP매입액, 2020년 연간 42.3조 vs 비상계엄 직후 한달간 47.6조

1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정일영 의원에 따르면, 한은이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매입한 RP는 47조 6100억 원에 달했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의 연간 매입 총액(42조 3000억 원)보다 5조 원 이상 많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 5년 매입 총액의 무려 73.6%에 달하는 유동성이 12·3 비상계엄 선포 직후 한 달 동안 풀린 셈이다.

한은은 지난해 1~11월 이미 58조 5000억 원의 RP를 매입했으며, 여기에 12월 실적을 합치면 연간 매입액이 사상 최대인 106조 1000억 원에 이른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윤석열 대통령 계엄 선포 직후인 지난달 3일 밤 무제한 유동성 공급 방침을 밝힌 데 이어 이튿날 오전에는 RP를 비(非)정례으로 매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한은은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는 경우 RP 매입을 통해 단기 원화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한다. 금융기관이 소유한 채권을 매입해 유동성을 공급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해당 채권을 되팔아 유동성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한은이 RP를 대거 매입하면 단기간에 엄청난 유동성이 시장에 투사되며, 그 효과는 기준금리 인하보다 클 수 있다.

정일영 의원은 “내란이 금융시장에 끼친 악영향이 코로나 팬데믹보다 크다는 것을 한은이 입증한 셈”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 경제의 발목을 부러뜨린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출처 : 정일영 의원실 제공

 

물가 걱정말라던 한은, 12월 한달간 RP매각은 고작 8000억

한편 이창용 총재가 RP매입을 사실상 무제한하겠다고 선언한 직후부터 과잉 유동성 시장 투사가 인플레이션을 촉발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최용훈 한은 금융시장국장은 지난해 12월 16일 한은 공식 블로그에 “실제로 시장안정화 조치 발표 및 두 차례의 비정례 RP 매입 이후 단기금융시장이 평소 수준에서 원활히 작동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콜금리 및 RP금리는 기준금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안정적인 흐름을 지속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최 국장은 ‘환매조건부’라는 단서가 달렸듯 RP 매입이 매매기간 종료 시 자동으로 반대 방향의 거래가 이뤄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난 12월 4일 RP 매입을 예로 들면, 당시 한은은 14일의 매입 기간을 전제로 금융기관으로부터 10조 8000억 원 상당의 증권을 받고 그만큼의 자금을 공급했다. 이 거래는 오는 18일에 한은이 매입했던 증권을 해당 금융기관에 다시 매각하고 10조 8000억원에 일정 이자를 더한 자금을 회수함으로써 종료된다. 최 국장은 “유동성 공급 확대 효과는 매입기간인 14일 동안만 지속되고, 그 이후에는 소멸된다”며 “RP 매입은 본원통화의 규모를 항구적으로 증가시키지 않기 때문에, 짧은 기간 일시적 유동성 공급이 물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런 계획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12월 한달 동안 무려 47조 6100억 원어치의 RP를 매입했던 한은이 매각한 RP는 고작 8000억 원에 그쳤다. 한은은 12월 5일 7일물 2000억 원, 12월 12일 7일물 2000억 원, 12월 19일 7일물 2000억 원, 12월 26일 7일물 2000억 원을 각각 매각했다. 쉽게 말해 12월 한달 동안 한은은 무려 47조 6100억 원 규모의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한 반면, RP매각을 통한 유동성 회수는 달랑 8000억 원에 불과했다. 해가 바뀌었음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한은은 1월 7일 9일물 15조 원어치의 RP를 매입한 반면 RP매각은 1월 2일과 9일 각각 2000원씩 총 4000억 원 어치에 그쳤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F4'라 불리는 이복현 금감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최 대행, 김병환 금융위원장. © 연합뉴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F4’라 불리는 이복현 금감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최 대행, 김병환 금융위원장. © 연합뉴스

 


무제한 RP매입은 어마어마한 부작용 동반할 것

자금중개를 원활하게 돕는데 그친다는 한은의 주장과는 달리 무제한 RP 매입은 여러가지 부작용을 수반한다. 한은의 주장처럼 부작용이 거의 없다면 매일처럼 RP 매입을 하면 될 일이다. 지난해 12월과 올 1월의 데이터가 극명하게 보여주듯 RP 매입 규모가 매각 규모를 압도할 경우 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주지하다시피 인플레이션은 아직 진압되지 않았다.

무제한 RP매입은 채권시장의 가격시스템도 교란한다. 채권은 우량채권과 비우량채권이 공존하며 우량도에 따라 금리가 달리 정해진다. 그런데 그동안 국채와 통안증권 같은 최우량채를 제한적으로 매입하던 한은이 사실상 RP를 무제한 매입하겠다고 나서면 비우량채들이 특혜를 받게 되고 이에 따라 금리도 영향을 받으면서 채권시장의 가격시스템이 교란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밖에 없다.

한은의 무제한 RP 매입은 원화 약세를 초래해 환율 급등을 야기할 가능성도 높다. 아직까지는 4000억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와 국민연금의 환헤지 등을 통해 무제한 RP 매입의 원화가치 약세 압력이 가시화하지 않았을 뿐이다.


무제한 양적 완화 결정으로는 미 연준도 혹독한 대가 치러

이 총재가 결정한 한은의 무제한 RP매입은 미 연준의 무제한 양적완화를 연상시킨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 연준은 기준금리를 실효하한까지 인하한 것도 모자라 은행들이 가진 국채와 MBS(주택저당증권) 등을 매입해 천문학적 유동성을 시장에 투사했다. 양적 완화 효과를 만끽한 연준은 코로나 팬데믹이 습격하자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를 크게 능가하는 무제한 양적완화 정책을 폈고 그 대가로 40년 만의 인플레이션 부활을 얻었다. 

기축통화국이자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조차 양적완화를 함부로 하다간 큰 코 다친다는 교훈을 얻었는데 이창용 총재와 한국은행은 마치 내일이 없다는 듯 무제한 RP 매입을 통한 양적완화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조기 대선을 통해 새 정부가 구성되더라도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시민언론 민들레 2024년 1월 16일>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