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신뢰를 상실한 트럼프의 미국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정책 때문에 금융시장은 대혼돈에 빠졌다. 금융시장의 붕괴에 화들짝 놀란 트럼프는 중국을 제외한 타국에는 관세유예를 선언했지만 미봉에 불과하다. 시장에선 미 국채가격이 폭락하는 등 트럼프 미국을 곤경으로 밀어넣는 중이다. 나아갈 수도, 물러서기도 힘든 트럼프의 관세정책이 어떤 식으로 결말을 맺을지 전 세계가 숨을 죽인 채 지켜보고 있다.
널뛰기 관세정책으로 이미 시장의 신뢰를 잃은 트럼프 행정부
트럼프 대통령이 금융시장 붕괴를 막기 위해 관세 유예를 발표하면서 지난 9일(이하 현지시간) 뉴욕 주식시장이 기록적인 상승세를 보였으나 하루도 안 돼 10일에는 다시 급락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3.5% 떨어졌고, 전날 숨 고르기 하던 미국 장기 국채 금리는 다시 급등(=채권값 하락)했다.
달러화 가치도 미국 자산시장 매도세가 일어나면서 사흘째 하락했다. 대신에 안전통화로 여겨지는 스위스프랑의 경우 10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뛰었다. 경기침체 우려에 국제 유가도 내림세를 이어갔다.
최근 이틀간의 뉴욕 증시 변동성은 팬데믹이나 2008년 금융위기 당시와 버금가는 수준으로 평가된다.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의 혼란스러운 관세 정책이 미국 경제에 대한 신뢰를 급속히 약화시키고 있으며, 향후 3개월 동안 시장을 불안에 떨게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스미드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빌 스미드 최고투자책임자는 “이 사태가 끝나고 우리가 행복한 일상으로 빨리 돌아갈 가능성은 매우 낮다. 지금은 엄청난 약세장의 시작이다”라고 말했다.
미국 고위험 채권 펀드의 자금 유출도 역대급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데이터 제공업체 LSEG 리퍼 자료를 인용, 지난 3일부터 9일까지 일주일간 미국 고수익·고위험 채권 펀드에서 96억 달러, 레버리지론 펀드에서 65억 달러의 자금이 빠져나갔다고 보도했다. 모두 사상 최대 규모의 자금 유출이다.
관세전쟁으로 경제 리스크가 확대되자 투자자들이 현금자산으로 대거 몰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위험도가 높은 채권의 경우 발행자의 재정 상황이 열악하기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에 금방 노출된다.
월가에서는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몰라 주식, 채권, 원자재 가격 전망도 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한다.
트럼프의 종잡을 수 없는 관세정책으로 인해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가 급등하면서 미국에서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중이다. 높은 관세 자체도 문제지만 부과와 철회가 반복되는 데다 주먹구구식 관세율 계산, 중국과의 대결 격화 등이 미국 정책에 대한 신뢰를 현저히 무너뜨렸다는 평가다.
미국발 무역전쟁은 공급망 붕괴, 국경 간 무역 감소, 수입품 가격 상승으로 인한 물가 상승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경제침체 우려도 확산하고 있다.
미 국채가격의 폭락은 트럼프도 견딜 수 없어
트럼프가 황급히 관세유예를 선언한 주된 이유 중 하나가 국채 가격의 폭락이다. 통상 주가와 국채가격은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는데, 트럼프발 관세전쟁은 국채가격마저 폭락시켰다. 국채가격의 폭락은 금융시스템 전체의 붕괴와 국채이자 부담 폭증을 동시에 수반하기에 트럼프가 아니라 누구라도 버틸 수 없다.
미 의회예산국(CBO)에 따르면 미국의 국가부채는 이미 국내총생산(GDP)의 99%에 육박했다. 더 충격적인 건 2054년에는 GDP의 171%까지 치솟을 것이란 전망이다. 미 연방정부의 2024 회계연도 순이자 지급액은 8817억 달러(약 1207조 원)로 GDP의 3.06%에 이른다. 1996년 이후 28년 만에 최고치이자 사상 처음으로 국방 예산(약 8741억 달러)을 초과했다. 올해 연 이자는 1조2천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쯤 되면 국채이자를 지급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 악순환의 늪에 빠진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미 국채시장은 국채가격 폭락과 국채수익률 폭등의 이중고에 시달릴 상황이었는데, 트럼프발 관세전쟁이 불붙은 데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트럼프발 글로벌 경기침체의 쓰나미가 다가오는 듯
리서치 어필리에이츠의 퀘 응우옌 최고투자책임자는 “무역전쟁은 결국 경기침체를 초래할 것”이라면서 “(대통령은) 공황이 오기 전까지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므로 지금 주가는 합리적으로 그런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발 관세전쟁은 필연적으로 글로벌 경기침체를 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미래가 예측됨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관세전쟁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대공황은 몰라도 글로벌 경기침체의 쓰나미가 빠른 속도로 몰려오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