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의 그늘…업무·상업 시설 경매 15년 만에 최다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전국의 업무·상업 시설 경매진행건수가 2010년 1월 이후 최다를 기록하는 등 업무·상업 부동산들도 혹한기를 겪고 있다. 서울 아파트 경매시장도 양극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낙찰률과 낙찰가율이 모두 하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 세계를 상대로 한 트럼프발 관세전쟁의 여파로 각국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줄지어 하락하는 등 글로벌 경기침체가 이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글로벌 경기침체의 지속은 가뜩이나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한국경제에 더 크 시름을 안기고 있다. 부동산 시장경기의 첨병이라 할 경매시장의 부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부동산 침체에 급증한 전국 업무·상업 시설 경매진행건수
경·공매 데이터 전문기업 지지옥션이 10일 공개한 ‘2월 경매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업무·상업시설 경매 진행 건수는 전달(4245건)보다 35.7% 늘어난 5759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0년 1월(5911건) 이후 15년 1개월 만에 최다 건수다.
고금리 지속으로 상업·업무용 빌딩 등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면서 경매 물건 적체가 이어지는 것으로 해석된다. 낙찰률(20.9%)은 3.2%포인트, 낙찰가율(59.4%)은 4.4%포인트 각각 상승했다. 지난달 전국 주거 시설 경매 진행 건수는 총 8909건으로 전달(6844건) 대비 30.2% 증가했다. 낙찰률(32.9%)은 1.4%포인트 상승했으나 낙찰가율(76.6%)은 1.8%포인트 하락했다. 전국 토지 경매는 29.3% 증가한 7414건으로 집계됐다. 2013년 12월(8795건) 이후 10년 3개월 만에 가장 많았다.
참고로 10일 법원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부동산 담보 대출자가 원리금을 3개월 이상 연체해 임의경매로 넘어간 부동산(토지·건물·집합건물)은 13만 9847건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2013년(14만 8701건) 이후 최대치이고 2022년(6만 5586건)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서울 아파트 경매시장도 낙찰률과 낙찰가율이 모두 떨어져
부동산 경매시장의 중핵이라 할 서울 아파트 경매시장도 부진을 면치못했다. 서울 아파트 경매는 모두 253건이 진행돼 전월(231건)보다 9.5% 증가했다. 낙찰률은 42.7%로 전월(47.2%) 대비 4.5%포인트 하락했으며, 낙찰가율은 91.8%로 전월(93.3%)과 비교해 1.5%포인트 낮아졌다. 신규 경매 물건이 증가하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선호도가 낮은 지역에서 낙찰가율 약세가 이어지는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다만 토지 거래 허가 구역이 해제된 송파구 잠실동 일대는 집값이 급등하면서 인근 신축급 대단지 아파트 낙찰가율도 강세를 보였다고 지지옥션은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달 전국에서 최다 응찰자를 기록한 물건도 송파구에서 나왔다. 가락동 헬리오시티(전용 면적 85㎡타입) 1가구 경매에 모두 87명이 입찰해 감정가(18억3천700만원)의 117.5%인 21억5천778만원에 낙찰됐다.
한편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방배그랑자이 105동 506호는 경매로 나와 유찰됐다. 국민평형인 전용면적 85㎡로 시세는 27억~30억 원, 감정가는 28억3000만 원에서 1차 유찰돼 22억 6400만 원에 2차 매각이 진행될 예정이다.

출처 : 연합뉴스
트럼프발 관세전쟁 여파로 각국 성장률 전망치 하락
부동산경매시장이 빙하기를 통과 중인 마당에 악재가 더해졌다. 트럼프발 관세전쟁의 여파로 한국을 포함한 각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줄하향 중이기 때문이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유럽중앙은행(ECB)은 올해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1%에서 0.9%, 내년은 1.4%에서 1.2%로 각각 하향 조정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25% 관세 중 상당 부분을 약 1개월간 유예받은 멕시코는 아비규환 상태다. 멕시코 중앙은행은 지난달 21일 올해 경제 성장률이 0.6%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는데, 이는 지난해 11월 전망치 1.2%의 반토막 수준이다.
중국의 경우 올해 5% 성장률을 목표로 내세운 중국 정부의 희망과는 달리 골드만삭스와 HSBC는 4.5%, UBS는 4%로, JP모건은 3.9%로 각각 전망치를 내렸다. 대만은 3.29%에서 3.14%로, 태국은 2.9%에서 2.5%로 하향 조정했다.
미국 역시 예외일 순 없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4분기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2%에서 1.7%로 낮추고, 12개월 내 경기 침체 발생 확률을 15%에서 20%로 상향 조정했다. 모건스탠리는 올해 4분기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1.9%에서 1.5%로 낮췄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도 1.3%에서 1.2%로 내렸다. 한국은행도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9%에서 1.5%로 내린 바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평가는 더욱 박하다.

주요 투자은행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 변화 추이. 연합뉴스
근린궁핍화의 유령이 전 세계를 돌아다녀
1929년 세계대공황 당시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은 관세를 높이면서 경기 침체를 극복하려고 했다. 그 결과 모두가 가난해지고 불행해졌다. 이른바 ‘근린궁핍화’의 전형적인 사례다.
놀랍게도 트럼프가 이 길을 정확히 따라가고 있다. 근린궁핍화의 쓰나미가 전 세계를 강타하는 마당에 부동산 시장경기의 첨병이라 할 부동산경매시장이 기력을 찾기란 매우 어려울 성 싶다. 부동산 경매시장의 혹한기가 끝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