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요자 핑계삼아 집 값 더 띄우려는 윤석열 정부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주담대 위주의 가계대출 폭증세가 8월 9조 원을 돌파하는 등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지경에 이르자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증가세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고, 은행들도 앞다퉈 대출규제에 나섰다. 놀라운 건 성태윤 대통령실 실장이 실수요자 운운하며 대출을 은행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대출규제에 급제동을 걸었다는 사실이다. 성 실장은 금리 인하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며 에둘러 한국은행을 압박하기도 했다. 성 실장에 질세라 박상우 국토부장관은 정책금융이 집값 상승과 상관이 없다며 정책금융을 계속 시장에 투입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시중은행들은 윤 정권의 의중을 간파했는지 가계대출 관리의 예외를 빛의 속도로 만들고 있다. 서울 아파트 거래액이 8월까지 이미 작년 거래액을 아득히 상회한 터인데도 윤 정부는 아직도 배가 고픈지 집값 부양을 위한 연료를 시장에 계속 공급할 요량이다.
대출 확대와 금리 인하에 조바심 태우는 성태윤 실장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8일 MBN에 출연해 대출은 은행자율에 맡기고 금리는인하할 여건이 됐다고 발언했다.
성 실장은 최근 정부 기조에 따라 금융권이 가계 대출을 조이면서 실수요자들이 선의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는 지적에 “전반적인 대출 건전성을 관리하는 가운데 실수요자의 대출 어려움이 있어서는 곤란하다”며 “투자·투기 목적으로 간주되는 대출은 엄격히 관리하지만, 실수요자에 대해서는 대출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출 자체는 금융기관이 자율적으로 하되 실수요와 실수요가 아닌 부분을 구분하는 가이드라인을 금융당국이 준비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또한 성 실장은 금리 인하와 관련해서는 “금리 여건이 인하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은 맞다고 보인다. 금리 인하 환경은 상당히 돼 있다”며 “(금리인하가) 일반적으로 경기에는 도움이 된다고 보이지만 가계 부채 확대와 부동산 불안정이 있을 수 있으므로 대출 관리 감독 강화 형태도 결합해서 접근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성 실장의 이같은 발언은 주담대 위주의 가계대출 폭증세에 금융당국이 제동을 걸고 나서고 은행들도 주담대와 전세대출 등에 대한 규제강화에 나선 마당에 나온 것이라 눈길을 끈다. 실수요자 운운하며 ‘대출을 금융권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성 실장의 발언을 가계대출 강화에 딴지를 거는 것으로 해석하는 건 합리적이다. ‘금리를 인하할 환경이 조성됐다’는 성 실장의 발언을 한국은행에 기준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해외 직접구매(직구) 논란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2024.5.20. 연합뉴스
정책금융이 집값을 끌어올린 원인이 아니라는 국토부장관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9일 디딤돌·버팀목·신생아 대출 등 정책대출이 집값을 끌어올린 직접적 원인은 아니라면서 정책대출 대상을 줄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호언했다.
박 장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정책자금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정책자금으로 살 수 있는 집과 현재 인기 지역의 주택 가격대를 보면 정책대출이 (집값 상승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집 살 생각이 없는 사람이 정부가 싼 이자를 준다고 해서 과연 집을 샀겠느냐”며 “정책자금은 주택 수급이 불안할 것 같고, 전세사기 문제로 전셋집 구하기도 쉽지 않으니 이참에 집을 사자고 판단한 이들에게 유효한 수단을 줬던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박 장관은 “청년층에게 집 살 수 있는 돈을 빌려주겠다고 한 약속, 아기를 낳으면 집을 살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 약속은 정부의 주요 정책 목표”라며 “약속된 대상을 줄이거나 정책 모기지의 목표를 건드리는 일은 가급적 하지 않고, 시중금리와 정책대출 금리의 격차가 너무 벌어지지 않도록 조정하는 정도로 하겠다”고 말했다.
박 장관의 주장과는 달리 신생아 특례대출 신청액이 출시 반년 만에 7조 원을 넘어서는 등 윤 정부가 온갖 미명을 붙여 시장에 살포 중인 정책금융이 시장불안의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정책금융으로 인기 지역의 고가 주택을 매수하는 건 어렵지만, 정책금융을 집중 살포해 전체 거래를 인위적으로 활성화해 주택가격을 끌어올리고 대기수요를 시장에 끌어들이는 역할 정도는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10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고양아람누리에서 '국민이 바라는 주택'을 주제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2024.1.10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https://cdn.mindlenews.com/news/photo/202409/9593_30749_4852.jpg)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10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고양아람누리에서 ‘국민이 바라는 주택’을 주제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2024.1.10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벌써부터 뚫리기 시작한 대출 관리의 구멍들
윤석열 정부의 정책실장과 국토부 장관이 출격하자 은행들의 태도가 급변했다. ‘총량 관리’에서 ‘예외 항목’으로 실수요 대책을 보완하겠다고 한 것이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1주택 소유자에 대한 처분 조건부 신규 구입 목적의 주택담보대출 취급을 예외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앞서 1주택자의 경우 처분 조건이라도 취급하지 않겠다는 것에서 한발 물러나 당일 보유 주택을 매도하는 조건으로 집을 사는 차주는 실수요자로 판단해 이에 대해선 취급하겠다는 것이다.
신한은행은 생활안정자금 주담대도 임차보증금 반환 목적이라면 1억 원을 초과할 수 있다고 예외로 두고, 신용대출도 결혼 및 가족 사망·출산·의료비 등에서는 연 소득 내 취급에서 연 소득의 150%(최대 1억 원)까지 허용하기로 했다.
우리은행도 결혼 예정자 및 상속의 경우에 주담대와 전세자금대출을 내주는 등 실수요자 보호를 위한 대출 취급 예외 조건을 명확히 제시했다. 이 외에도 수도권 직장 변경 및 자녀의 수도권 진학, 치료 목적이나 부모 봉양 등의 경우에도 증빙 자료를 제출하면 유주택자의 전세대출도 내주기로 했다.
국민은행은 1주택 소유자라도 처분 조건부 및 결혼 예정, 상속 대출 등에 대해선 신규 구입목적의 주담대를 허용하고 있다. 생활안정자금 주담대의 경우도 전세보증금 반환 목적이라면 연 1억 원의 한도를 초과해 취급할 수 있고, 소유권 이전 등 조건부 전세자금대출은 올해 10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제한한다.
조그만 균열이 둑을 무너뜨리는 법인데 이런 식으로 예외를 열어주어서 대출 증가세를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5대 은행 가계대출 증가액 추이
올해 1~8월 서울 아파트 매매금액, 작년 연간 거래총액을 이미 초과
문제는 부동산 시장이 대출의 고비를 확 풀만큼 녹록한 상황이 전혀 아니라는 사실이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이 국토교통부의 아파트 실거래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1∼8월 전국 아파트 매매거래량(9월 4일 집계 기준)은 30만 1395건, 거래액은 139조 3445억 원으로 집계됐다. 거래량은 작년 한 해 거래량(37만 9934건)의 79%, 거래액은 작년 한 해 거래총액(151조 7508억 원)의 92%에 이른다.
권역별로 살펴보면 수도권은 올해 들어 8월까지 14만 1911건의 거래량을 기록하며 지난해 연간 거래량(15만 6952건)의 90% 수준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다. 거래액은 96조 8442억 원으로 작년 한 해 거래총액(93조 3531억 원)을 넘어섰다.
충격적인 건 서울이다. 서울의 경우 올해 1∼8월 거래량과 거래액이 모두 지난해 연간 수치를 넘어섰다. 올해 1∼8월 거래량은 3만 8247건으로 작년 거래량의 112% 수준이었고, 거래액은 44조 945억 원으로 작년 거래금액의 124%에 달했다.
서울 아파트 매매시장에서 종전 최고 거래가격보다 더 비싸게 거래되는 신고가 비율은 지난 4월 10%를 넘어섰고 8월에는 12.6%를 차지했다. 또 상승거래 비중이 지난 7∼8월에는 절반을 넘어서는 등 서울 아파트값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전용 84㎡ 아파트가 60억 원에 팔려 ‘국민평형’ 역대 최고가를 경신하기도 했다. 같은 단지 같은 면적 아파트가 55억 원에 거래돼 최고가를 기록한 지 한 달만에 5억 원이나 올랐다.
윤석열 정부가 집권 이후 줄곧 꾸던 꿈인 집값 띄우기가 마침내 성공한 셈이다. 이쯤됐으면 족한 줄 알고 멈출 법도 하건만 윤 정부는 여전히 배가 고픈지 대출 규제에도 강력한 태클을 걸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임기를 무사히 마칠지 그렇지 않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후임 정부와 한국사회가 윤 정부가 인위적으로 일으킨 집값 버블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천문학적 비용을 지불할 것이라는 사실은 확실히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