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된 경기침체의 공포…금리인하 환호할 때 아니다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지난 주 금요일 미국발 경기 침체 우려에 코스피가 하루 아침에 100포인트 넘게 빠지면서 시장참가자들을 충격과 공포에 빠트렸다. 한국 증시 뿐 아니라 전 세계 증시가 사정이 비슷하다. 증시를 비롯한 자산 시장은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만 학수고대하는 처지였는데,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할만큼 경기가 냉각된 지표들이 속속 발표되자 뒤늦게 경기침체의 습격을 실감 중이다. 연준이 기준금리만 내리면 자산시장이 폭등하리라는 기대로 투자를 하다간 큰 낭패를 당하기 쉽다.
코스피가 지난 2일 미국발 경기 침체 우려에 2670선까지 속절없이 밀려났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101.49포인트(3.65%) 내린 2,676.19로 마감했다.
하락률은 2020년 8월 20일(3.66%) 이후 약 4년 만에, 지수 하락폭은 2020년 3월 19일(133.56포인트) 이후 4년 5개월여만에 가장 컸다.
일명 ‘공포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는 21.77로, 2022년 10월 31일(21.97) 이후 약 1년 9개월만에 가장 높았다.
또한 뉴욕증시 3대 지수가 모두 하락했고 닛케이225 지수는 5.81%, 대만 가권 지수는 4.43% 급락했다. 유럽증시도 폭락했다. 글로벌 경제시장에 위험 회피 심리가 확산하면서 이날 코스피에서는 외국인 자금이 대거 빠져나갔다.
경기침체 구간 진입 알리는 지표들 속속 등장 중인 미국
불과 얼마 전까지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증거를 찾기 위해 둔화된 경기지표들을 애타게 기다리던 미국은 이제 도리어 경기침체를 나타내는 지표들의 출현에 당황 중이다.
미국의 7월 제조업 구매자관리지수(PMI)가 46.8로, 시장 예상치(48.8)를 크게 밑돌면서 경기 침체 공포감이 커진 데 이어, 고용시장이 결정적으로 빠르게 나빠지고 있다.
미 노동부는 7월 미국의 비농업 일자리가 전월 대비 11만 4000명 늘었다고 2일(현지시간) 밝혔다. 이는 직전 12개월간 평균 증가폭(21만 5000명)의 거의 반토막 수준이다.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18만 5000명)도 크게 밑돌았다.
지난 5월 고용 증가 폭은 21만 8000명에서 21만 6000명으로 2000명 줄었고, 6월에도 20만 6000명에서 17만 9000명으로 2만 7000명으로 하향 조정됐다. 5∼6월을 합산한 하향 조정 폭은 2만9천명에 달했다.
한편 7월 실업률은 4.3%로 6월(4.1%) 대비 0.2%p 상승했으며, 4.1%를 예상한 전문가 전망치를 상회했다. 7월 실업률은 2021년 10월(4.5%) 이후 2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또한 시간당 평균임금 상승률은 전월 대비 0.2%, 전년 대비 3.6%로, 모두 시장 전망치에 0.1%p씩 밑돌았다.
평균 수준을 크게 밑도는 7월 고용 증가세, 기존 지표의 하향 조정, 예상 밖 실업률 증가, 평균임금 상승률의 둔화 등의 지표는 미국 고용시장이 빠르게 식고 있음을 방증한다. 또한 고용시장의 냉각은 미국 경제의 엔진인 민간소비의 냉각으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며, 이는 미국 경제가 침체국면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미국 경기침체 우려에 유가마저 출렁…중국 제조업도 위축
미국 경기침체 우려 여파는 유가 시장까지 강타중이다. 2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근월물인 9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2.79달러(3.66%) 급락한 배럴당 73.5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글로벌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10월 인도분 가격도 전장 대비 2.71달러(3.41%) 떨어진 배럴당 76.81달러에 마감했다.
미국 고용지표가 예상보다 더 나쁘게 나오면서 미국 경기에 대한 우려가 유가를 갉아먹었다. 미국 경기가 침체로 접어들면 소비가 줄면서 원유 수요가 감소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전 세계 제조업의 성장 엔진 중국의 제조업 활동이 위축되고 있는 점도 원유 수요에 악재다. LSEG원유분석에 따르면 아시아의 7월 원유 수입은 지난 2년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중국과 인도에서 원유 수요가 감소한 데 따른 결과다.
반면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는 이번 주 회의에서 산유량을 동결하기로 했다. 산유량 변화 없이 원유 수요가 감소하는 국면인 것이다. 게다가 원유 시장 참가자들은 중동의 군사 충돌 가능성에 대해서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부동산 호재? 금리인하 원인 냉정하게 직시할 때
한편 실업률이 4.3%까지 오르면서 미국 경기침체를 가늠하는 ‘삼의 법칙’ 지표가 발동됐다. 삼의 법칙은 미국 실업률의 최근 3개월 이동평균치가 앞선 12개월 중 기록했던 최저치보다 0.5%p 이상 높으면 경기침체에 접어든 것으로 판단한다.
7월 실업률 결과로 미국 실업률의 최근 3개월 이동평균치와 앞선 12개월 중 기록했던 최저치의 괴리를 산출한 결과 0.53%p로 나타났다. 최소한 삼의 법칙 기준으로는 미국 경기가 침체 진입을 알린 것이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시장은 연준의 9월 기준금리 인하 폭을 0.25%가 아니라 0.5%로 예상하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금리선물 시장은 이날 고용지표 발표 직후 연준이 9월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50%p 낮출 확률을 63%로 반영했다. 이는 전날의 22%에서 크게 오른 것이다.
간과해선 곤란한 건 연준이 9월 FOMC에서 기준금리를 0.5%내리고 연내에 총 1.0%가량 인하할 가능성이 대두될만큼 미국 경제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사실이다. 부동산을 포함해 자산시장에 참여 중인 사람들은 연준이 기준금리만 내리면 자산가격이 크게 상승할 것으로 막연히 기대 중이다. 그런 사람들은 연준이 급하게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할 까닭에 대해 직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서울 아파트 불패론에 세뇌된 채 ‘빚투’와 ‘영끌’에 나서려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