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 풀린 가계 대출…거시 경제는 온통 지뢰밭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5대 은행 가계대출이 이달 들어 3조 6000억 원 이상 폭증했다. 윤석열 정부의 전방위적 집값 부양책에 힘입어 서울 아파트 시장이 들썩이는데 더해 금융당국이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2단계 시행을 이달에서 오는 9월로 돌연 연기하며 막차 수요를 부추긴데 따른 당연한 결과다.
금융당국은 뒷북 감독에 나서는 시늉을 하고 있지만, 별 의미가 없는 행동에 불과하다. 가뜩이나 나쁜 거시경제는 트럼프 2기가 도래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짐에 따라 설상가상의 상황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윤 정부는 빚내 집 살 것을 강권 중이고 적지 않은 가계가 이에 적극 호응 중이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브레이크 고장난 기관차처럼 폭주 중인 가계부채
22일 은행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 18일 기준 712조 1841억 원으로 6월 말(708조 5723억 원)보다 무려 3조 6118억 원 늘었다. 5대 은행 가계대출은 6월 한 달 새 5조 3415억 원 급증하면서 2021년 7월(+6조 2000억 원) 이후 2년 11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뛰었으며 이달에도 증가세가 전혀 꺾이지 않고 있다. 가계대출 증가세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단연 주택담보대출(552조 1526억 원→555조 9517억 원)로 3조 7991억 원 늘었다.
은행권에 따르면 가계대출이 계속 늘어나는 이유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택 거래량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도 오르면서 매수심리가 되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경제야 어떻게 되건 말건 서울 등 수도권 아파트 가격만 올릴 생각에 전방위적 집값 부양책을 쏟아낸 윤 정부의 업적(?)이다. 아울러 스트레스 DSR 시행을 앞두고 한도가 축소되기 전 ‘막차’를 타려는 수요도 한꺼번에 몰리고 있다는 게 은행권의 설명이다.
시장금리가 전반적으로 계속 떨어지는 것도 영끌과 빚투 부담을 줄이고 있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억제 압박에 은행들이 줄줄이 가산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지만 하반기 미국과 한국 기준금리 인하 기대를 미리 반영한 시장금리 하락세를 거스르기에는 역부족이다.
스트레스 DSR시행 연기하고 감독 시늉하는 금융당국의 이중성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증가세가 심상치 않자 지난 15일부터 5대 은행과 카카오뱅크를 대상으로 현장점검에 나섰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을 갑작스럽게 연기하면서 가계대출 증가세를 부채질해놓고 뒤늦게 점검에 나섰다는 지적이 응당 나올 수 밖에 없다. 특히 금융당국이 연기 발표를 했던 6월 말 당시,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이미 연간 가계대출 경영 목표치를 넘어섰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실이 5대 은행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5대 은행의 올해 가계대출 경영목표(연간 증가액) 총합은 12조 5000억 원이다. 5대 은행의 올해 가계대출 증가액은 지난 6월 말 기준 16조 1629억 원을 기록했는데, 6개월 만에 연간 가계대출 증가 목표 수준을 초과한 셈이다.
체력이 고갈된 한국경제, 트럼프 2기 출범까지 가시화
경제가 성장하고, 가계 소득이 늘며, 고용의 질이 좋고, 무역 수지가 양호하며, 국가재정이 튼튼하다면 가계가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하는 것이 별 문제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대한민국은 투자, 소비, 무역수지, 정부지출 등의 전 부문에서 총체적 부진에 빠져 있다. 상황이 더욱 나쁜 건 어떤 부문도 현재 흐름으로 봤을 때 회복될 여지가 낮아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미 대한민국 경제는 빈곤의 악순환 고리에 갇힌 것인지도 모른다.
설상가상으로 트럼프 2기의 출범이 눈 앞에 다가오고 있다. 트럼프 2기는 인플레이션의 부활, 고금리의 고착화, 강달러, 대미무역수지 흑자 축소 등 한국경제에는 재앙과도 같은 폭탄을 투하할 가능성이 높다. 한마디로 가뜩이나 체력이 떨어진 한국 경제에 감당하기 힘든 악재들이 쏟아질 수 있는 형국인 것이다. 감당하기 힘든 경제위기의 쓰나미가 시시각각 몰려 오는데 대한민국은 서울 아파트 값에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니 이 노릇을 대관절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