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칼럼] 마곡에 2조 태운 국민연금 “아뿔싸”…원금 손실 위기




마곡에 2조 태운 국민연금 “아뿔싸”…원금 손실 위기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국민연금이 국내 최대규모의 부동산 투자를 했다가 자칫 2조 원이 훨씬 넘는 투자원금을 회수하지 못할 위기에 직면했다. 국민연금이 워크아웃 중인 태영건설이 시공사로 있는 마곡 ‘원그로브’에 2조 원이 넘는 투자금을 쏟아부었는데, 준공을 코 앞에 둔 시점인데도 공실률이 사실상 100%를 기록 중이기 때문이다. 수익은 고사하고 원금 회수도 곤란한 처지에 놓인 국민연금은 대기업 입주만 학수고대하는 처지로 몰렸는데 마곡의 입지와 오피스 빌딩시장 상황을 보면 그것도 녹록치 않아 보인다. 국민연금이 세금과 다를 바 없는 돈을 워크 아웃 중인 태영건설에 계속 투자한 대목에 대해서 혹독한 비판이 불가피해 보인다.

 

국민연금이 2.3조원을 쏟아부은 태영 마곡 원그로브, 임차인은 사실상 0

서울 서부권역을 대표하는 초대형 복합시설이 될 것이라던 마곡지구 ‘원그로브’가 준공 한 달을 앞두고 ‘공실률 100%’라는 충격적인 사태에 봉착했다. 이 시설에 국내 부동산 투자액 중 역대 최대 규모인 2조 3000억 원을 쏟아부은 국민연금공단은 아연실색이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투자한 원그로브(CP4) 오피스동을 임차하기 위해 계약을 맺은 업체는 한 곳도 없다. 원그로브는 연면적 약 46만 3098㎡로 여의도 IFC(50만 6205㎡)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규모다. 축구장(7140㎡) 64개와 맞먹는다. 지상 3층부터 11층까지 오피스, 지하 2층에서 지상 2층까지는 ‘원그로브몰’이 들어선다. 이 중 오피스동은 입주를 희망한 기업이 한 곳도 없고 상가 시설인 원그로브몰에는 이마트 트레이더스 한 곳만 들어서기로 확정한 상태다. 사실상 공실률 100%인 셈이다.

국민연금의 마곡 태영 원그로브 투자는 비판받을 대목이 많다. 국민연금은 2021년 이지스자산운용이 조성한 부동산 펀드를 통해 마곡지구 업무·상업 복합시설의 준공 조건부 선매입 계약을 체결했다. 사업비는 2조 6000억 원으로 국민연금이 투자한 국내 부동산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다.

문제는 당해 시설의 시공사인 태영이 워크아웃에 돌입했다는 사실이다. 앞서 지난 2월 부동산 업계에선 원그로브의 선매입 계약을 체결한 국민연금이 투자금 회수를 위해 계약을 해지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지난해 말 워크아웃을 신청한 태영건설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가운데 최대 규모 사업으로 자금 부족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통상 시공사의 워크아웃은 채권자의 기한이익상실(EOD) 사유가 돼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 응당 계약 해지를 하고 투자금을 회수했어야 할 국민연금은 어찌된 영문인지 그렇게 하지 않았고 절체절명의 위기 상태에 있는 태영건설은 목숨을 부지했다. 대신 국민연금은 원금 손실 위기에 봉착했다.  

국민연금법 105조 제1항에 의거한 ‘국민연금기금운용지침’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투자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 공공성 기준을 고려해야 한다. 공공성뿐 아니라 수익률을 관리해 연금 손실을 막아야 하는 의무도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이를 지킨 것 같지는 않다. 어쨌든 총 2조 3000억 원에 해당 건물을 매입하기로 한 국민연금은 두 차례 걸쳐 3500억 원의 계약금을 냈고, 현재는 잔금 납입이 남은 상태다.

 
입지가 열위한데다 면적이 너무 넓은 마곡 원그로브

국민연금 관계자는 “적극적인 임대차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고 준공 후 성과를 달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태영건설이 워크아웃 절차를 진행 중이어서 사업 정상화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준공 후 신규 임대가 가속화된 사례도 많다”면서 “국내 메이저 오피스 임대관리(LM)사 8곳은 마곡 내 타자산에 대한 임대차 권리를 포기하고 원그로브만을 대상으로 마케팅 전속계약을 체결했는데 이는 원그로브의 임대 수익성을 높게 평가한다는 의미”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인근의 ‘르웨스트 시티타워’가 3.3㎡(평)당 1800만원에 거래됐는데 국민연금은 2021년 3.3㎡당 1650만원에 선매입해 현 시점에 거래를 가정하면 평가 차익이 이미 2100억원에 달한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마곡지구는 중심업무권역(CBD), 강남업무권역(GBD), 여의도업무권역(YBD) 등 서울 3대 업무권역이 아닌 데다 여의도보다 서쪽에 치우쳐 있어 입지가 열위하다는 점, 마곡지구와 가까운 여의도에 대형 오피스 건물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는 점, 마곡지구 오피스 물량이 올해만 99만㎡에 달해 공급 과잉이라는 점 등을 감안할 때 국민연금과 이지스자산운용의 자신감이 그닥 미덥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거래 줄고 공실느는 오피스 빌딩 시장

설상가상으로 오피스 빌딩 시장에는 냉기만 가득하다.  부동산플래닛은 ‘서울시 오피스 매매시장 동향 보고서’에서 지난 5월 오피스빌딩 매매 건수가 5건에 그쳤다고 밝혔다. 지난해 2월(2건) 이후 15개월 만에 가장 적은 건수다. 전월인 4월과 비교하면 매매 건수는 3건(37.5%) 줄었고, 거래금액도 2940억 원에서 2658억 원으로 282억 원(9.6%) 줄어들었다.

오피스빌딩의 공실도 늘어나 10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지난 5월 서울의 오피스빌딩 공실률은 2.51%로 지난해 7월(2.53%) 가장 높았다. 4월보다는 0.17%포인트 올랐다. 공실률은 부동산플래닛 방문 조사와 부동산관리회사의 임대 안내문 등을 통해 파악한 수치다.

상업용 부동산 하락세는 사무실(집합) 거래량·거래액에서도 나타난다. 지난 5월 서울의 사무실 거래량은 올해 최저치인 72건으로 전월(98건) 대비 26.5% 감소했다. 거래금액도 전월(647억 원)보다 64.5% 줄어든 230억 원에 그쳤다.

 
오매불망 대기업 입주만을 기다리는 국민연금

공실이 발생하는데도 불구하고 임대인들이 임대료를 낮추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는 까닭은 인하된 임대료가 건물가격을 끌어내리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2조 30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자금을 쏟아부은 마곡 원그로브는 낮은 임대료가 문제가 아니라 아예 임차인이 없다. 국민연금은 대기업 입주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중인데, 그것도 여의치는 않아 보인다.

국민연금도 투자에 실패할 수 있고 그걸 탓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시공사인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에 돌입해 계약을 해지하고 투자원금을 회수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이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와 경위에 대해서는 엄중한 확인이 요구된다 할 것이다. 




<시민언론 민들레 2024년 7월 11일>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