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는 부동산 손절매 중…3분의 1토막난 빌딩도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몰려있는 샌프란시스코의 상업용 부동산 공실률이 40%에 육박하고, 반대쪽 동부에 있는 뉴욕 맨해튼의 한 빌딩 매매값이 6년 만에 3분의 1토막이 났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샌프란시스코발 상업용 부동산 공실의 쓰나미가 미국 전역으로 퍼지는 가운데 월가 은행들은 부동산 부실을 은밀히 처리 중이다. 경제호황을 거듭 중인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이 휘청거리는 마당인데, 대한민국의 상업용 부동산이 언제까지 무탈할지 모르겠다.
뉴욕 맨해튼 소재 빌딩이 3분의 1가격에 팔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달 11일(현지 시간)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맨해튼 중심 지역인 44번가 상업용 건물이 5000만 달러(약 688억 원) 미만의 가격에 거래가 합의됐다고 보도했다. 이 건물은 2018년 릴레이티드펀드매니지먼트가 1억 5300만 달러(약 2100억 원)에 구매했었다. 불과 6년만에 3분의 1토막이 난 것이다.
이번 거래는 현재 소유주인 릴레이티드펀드매니지먼트가 대출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채권자인 캐내디언임피리얼상업은행의 동의 하에 새로운 구매자에게 넘기는 공매(short sale) 거래다. 캐내디언임피리얼상업은행이 이 건물을 담보로 빌려준 대출 가운데 아직 남은 잔액은 매각가의 두 배가 넘는 1억 달러 안팎으로 전해졌다.
앞서 지난달 초에도 또 다른 뉴욕 중심가 오피스 빌딩이 헐값에 매각됐다. 블랙스톤이 2014년 6억 5000만 달러(약 8940억 원)에 구매했던 1740 브로드웨이 빌딩은 지난달 초 1억 8600만 달러(약 2560억 원)에 팔기로 대출기관과 협의됐다. 이 건물에 대한 최초 대출액은 3억 8000만 달러였다.
블룸버그는 “오피스 부동산 가격이 하락해 대출액보다 더 낮아지는 경우가 늘면서 공매가 증가하고 있다”며 “은행들은 공실이 많은 상업용 부동산 관리를 떠안기보다 채무자와 협의해 새로운 구매자를 구해 넘기는 쪽을 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샌프란시스코 공실 쓰나미 다른 곳으로 전파 중
현재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등 주요 도시의 상업용 부동산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 증가 및 고금리에 따른 여파로 임차 수요가 줄어들면서 공실률과 대출 연체율이 증가 중이다. 무디스레이팅스에 따르면 미국 상업용 부동산 모기지담보증권(MBS)의 기초자산이 되는 대출의 연체율은 6.4%로 2018년 6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미 전역의 사무실 공실률은 20%에 육박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50조 원 이상의 미국 사무실 건물이 대출 상환을 제때 하지 못하고 있다. 무디스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미국의 오피스 공실률은 19.8%로 지난해 4분기 대비 0.2%포인트 상승해 사상 최고치를 또다시 갈아치웠다. 해당 집계를 시작한 1979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기술 기업이 많아 원격근무 비중이 높은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공실률은 1분기 36.6%까지 치솟았다. 사무실 10개 중 4개가 비어 있는 셈이다.
공실률 상승의 여파는 금융시장으로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에 따르면 올해 1분기 380억 달러(약 52조 원) 규모의 미국 사무실 건물이 채무불이행이나 압류 등으로 제때 상환이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2년 4분기 이후 최대 규모다. 상업용 부동산은 통상 비용의 최소 절반 이상을 대출로 충당하는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 확대로 사무실 임대 수요가 줄어든 데다 고금리가 장기화되면서 대출 상환이나 재연장이 어려워진 탓이다. 무디스는 현재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73%는 부채 및 공실률 상승 등의 이유로 대출 연장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뉴욕 맨해튼 상업용 오피스 공실
은밀하게 부동산 부실채권 처리하고 있는 월가
뉴욕타임스(NYT)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보도한 바에 따르면 독일 은행 도이체방크의 한 계열사와 다른 독일계 금융사는 지난해 말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의 115년 된 ‘아르고노트 빌딩’에 대한 대출 채권을 억만장자 투자자 조지 소로스의 패밀리오피스에 매각했다. 비슷한 시기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보스턴 등지에 보유하고 있던 사무용 빌딩 관련 부실 대출채권을 매각했고, 지난 5월에는 캐나다 금융사 CIBC가 3억 달러 규모의 사무용 건물 관련 대출채권의 매각을 완료했다.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위기로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할 것으로 우려되면서 대형 금융회사들이 해당 자산을 손실 처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금융권에선 월가 은행들의 부동산 채권 매각에 대해 의견이 나뉜다. 금융시장 조사업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 마켓인텔리전스에 따르면 미국 내 은행권이 보유한 상업용 대출채권 규모는 총 2조 5000억 달러에 이른다. S&P 글로벌 마켓인텔리전스의 네이선 스토벌 디렉터는 은행들이 관련 익스포져(위험노출액)를 줄이는 과정에서 거래가 이뤄진 것이라며 “지금 나타나고 있는 매각은 단발성 이벤트”라고 평가했다.
반면 이 같은 손실 상각이 상업용 부동산 대출 관련 금융권의 손실 확대를 시사하는 신호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NYT는 “이 같은 (대출채권 매각) 조치는 은행권의 ‘만기 연장 후 문제없는 척하기'(extend and pretend) 전략이 한계에 다다랐으며 상업용 업무용 건물을 소유한 차입자들이 채무 불이행에 돌입할 것임을 일부 대출기관이 마지못해 받아들이고 있음을 시사한다”라고 평가했다.
상업용 부동산 금융을 전문으로 하는 매디슨 캐피털의 조너선 나크마니 매니징 디렉터는 수천억 달러 규모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이 2년 내 만기가 도래할 예정이라며 “아무도 업무용 부동산을 건드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법률사무소 오멜베니 앤드 마이어스에서 부동산 부문을 이끄는 마이클 해밀턴 파트너도 빚을 진 건물주들이 구매자를 찾는 거래에 여러 건 관여해 왔다고 언급했다. 돈을 빌려준 은행들은 대폭 할인된 가격에라도 건물을 매입해줄 수 있는 구매자들을 조용히 찾을 수 있도록 1년의 기간을 기다려줬다고 그는 전했다. 해밀턴 파트너는 “지금 내가 봐 온 것은 바퀴벌레가 기어 나오고 있는 장면”이라며 “일반 대중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임대를 알리는 표지판
미국도 저렇게 힘든데, 대한민국 무탈할까?
많은 전문가들이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홍지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올해 2월 미국 상업용 오피스 가격은 2년 전 대비 41% 급락했다”며 “고금리가 이어지며 이자비용이 커져 연체율도 증가하고 있어 만기 도래 예정인 부동산 대출 규모를 고려하면 위기 상황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이어 “상업용 부동산 시장 위기가 부동산 대출을 실행한 금융기관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미국뿐 아니라 유럽·아시아 지역의 금융기관에도 본격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해 금융시장 충격이 확대될 수 있어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주지하다시피 개발도상국을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경제성적표가 가장 좋은 나라가 미국이다. 그런데 그런 미국조차 간판격인 도시들의 입지 좋은 상업용 부동산들이 치솟는 공실률과 이자 부담을 못 견디고 시장에 헐값에 나오고 있다. 상황이 더 심각한 건 금리가 거의 제로에 가까웠던 2020~2022년 동안에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상업용 부동산에 투자한 투자자들이 매우 많았다는 사실이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 모기지는 5년 고정금리임을 감안할 때 상업용 부동산들이 헐값매물로 쏟아지는 올해부터가 시작이라는 대목이 공포스럽다. 상업용 부동산들의 공실률이 획기적으로 개선되거나 금리가 폭락하지 않는 한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단기간에 활력을 찾긴 어려워 보인다.
하긴 지금 미국 걱정할 때가 아니다. 경제의 모든 면에서 미국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체질이 허약하고 지표가 나쁜 대한민국의 상업용 부동산이 잘 견딜 수 있을지 가늠이 쉽지 않다. 강북 최대의 번화가라 할 홍대 주변에 텅텅 빈 상가들을 보면 마음이 저절로 어두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