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경의 토지와 자유] 시장이 학수고대하던 연내 금리인하, 물 건너가나?

시장이 학수고대하던 연내 금리인하, 물 건너가나?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부동산시장 참가자들을 비롯해 자산시장 관계자들이 오매불망 기다리는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가 올해를 넘길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소비와 고용 등 인플레이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거시지표들이 불타오르고 있어 금리 인하는 고사하고 자칫 금리 인상을 단행해야 할지도 모르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미 연준의 조속한 기준금리 인하가 부동산 등 자산시장에 구원투수 역할을 할 것이라고 잔뜩 기대했던 사람들에겐 재앙과도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미 개인소비지출 상승률
26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는 지난 3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식품·에너지 제외)가 전년 동월 대비 2.8% 상승했다고 밝혔다. 이는 시장 전망치인 2.6%를 웃돈 것이다. 2월 상승률(2.8%)과는 같다. 전월과 비교한 오름폭은 0.3%로 시장 예상치에 부합했다.
PCE 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7% 상승해 2월의 2.5%에서 상승 폭이 확대됐다. 시장 예상치는 2.6%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전방위적 긴축기조 유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소비는 여전히 불타오르고 있다는 의미인데, 이러다 보니 올해 금리인하가 어렵지 않느냐는 시각이 미국 내에서 대두되는 중이다. 주지하다시피 PCE 물가지수 미 연준이 인플레이션 정도를 가늠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지표다. 
금리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거시지표들이 불타오르는 미국
비단 개인소비지출 상승률만 뜨거운 것이 아니다. 1월부터 3월까지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물론이거니와 구매자관리지수(PMI)도 시장의 예상을 상회했고, 비농업신규일자리의 증가세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거기에 미국의 3월 소매판매가 전월 대비 0.7% 증가했다. 한 마디로 인플레이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미국의 소비 및 고용 관련 지표가 말 그대로 불타오르는 상황인 것이다.
급기야 비둘기파에서 매파로 변신한 파월
사정이 이렇게 전개되다 보니 파월 의장도 뒤늦게 비둘기에서 매로 전향했다. 파월 의장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캐나다 경제 관련 워싱턴 포럼 행사에서 “최근 경제 지표는 확실히 더 큰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며 “오히려 그런 확신에 이르기까지 기대하던 것보다 더 오랜 기간이 걸릴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 통화정책 수준이 우리가 직면한 위험에 대처하기에 좋은 지점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파월 의장은 또 “최근 지표는 견조한 성장과 지속적으로 강한 노동시장을 보여준다”면서도 “동시에 올해 현재까지 2% 물가 목표로 복귀하는 데 추가적인 진전의 부족(lack of further progress)을 보여준다”라고 평가했다.
한편 그는 “높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된다면 현재의 긴축적인 통화정책 수준을 필요한 만큼 길게 유지할 수 있으며, 동시에 노동시장이 예상 밖으로 위축된다면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상당한 완화 여지가 있다”라고 말했다.
파월 의장의 공적 발언들이 늘 그렇듯 이번 발언도 모호하고 다의적이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에 대한 파월 의장의 관점이 기존과 달라진 점은 분명하다. 파월 의장은 지난달 연방상원 청문회에서 “더 큰 확신을 갖기까지 멀지 않았다(not far)”라고 말해 시장에 금리인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심어준 바 있다. 하지만 그런 파월조차 인플레이션과 금리에 대한 전망을 수정해야 할 만큼 거시지표들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
이미 연준 이사들 사이에서 형성되기 시작한 ‘더 늦게, 더 적게’(later and fewer) 금리를 내릴 것이란 컨센서스에 파월 의장도 합류한 셈인데, 온 사방에 불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구조적 인플레이션의 가능성을 부정하던 파월 의장이 불길이 여전히 맹렬한데도 불길이 사그라들고 있다고 경솔하게 말하다 태도를 바꾼 것이다.
 
구조적 인플레이션은 힘이 세다
미 연준의 유례없이 강력한 긴축 드라이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구조적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완강하기만 하다. 그동안 시장을 지배한 낙관은 구조적 인플레이션의 진정한 힘을 경시한 때문인데, 이제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20점 맞던 학생이 70점까지 올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70점에서 90점으로 올리는 건 극히 힘들다. 구조적 인플레이션이 꼭 그와 같다. 구조적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은 이제부터 진짜일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인플레이션과의 조속한 승리를 전제로 한 금리인하론에 기초한 투자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이었는지 경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