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칼럼] 은마아파트 80살 노인의 탄식…”재건축 포기하겠다”



은마아파트 80살 노인의 탄식…”재건축 포기하겠다”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서울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 단지의 대장 격인 은마가 사면초가 상태에 빠졌다. 가뜩이나 공사비가 치솟아 조합원 분담금이 늘어나는 마당에 조합장이 직무정지 처분을 받는 등 내홍이 걷잡을 수 없이 심화되고 있어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재건축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길 기다리던 조합원들 중 상당수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실망 매물을 던지고 있다. 물론 특수성도 있지만 은마의 사례는 부동산 대세 하락기에 재건축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강남 재건축 대장, 은마 올 들어 거래 달랑 3건

24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은마아파트는 올해 들어 지난 1월과 2월 이달 단 3건만 거래됐다. 거래된 매물은 모두 전용면적 76㎡형이었다. 전용 84㎡은 지난해 11월 이후로 거래가 끊겼다. 은마아파트가 4424가구 대단지라는 점을 고려하면 극히 저조한 거래량이다. 은마아파트는 지난해 111건이 거래되며 강남구에서 거래량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 바 있다.

거래가 실종되면 당연히 실거래가와 호가도 떨어지는 법이다. 이달 거래된 전용 76㎡는 1층 매물로 실거래가격이 22억 원이다. 지난해 11월에는 같은 층이 23억7000만 원에 팔렸다. 4개월 새 가격이 무려 1억7000만 원이 하락한 것이다. 올해 거래가 전무한 전용 84㎡는 낙폭이 더 큰 모양새다. 현재 최저 호가가 24억3000만 원(1층)으로 지난해 11월 실거래가격 27억8000만원(9층)과 비교해 3억5000만 원 빠졌다. 매물로 나온 물건이 1층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3억 원 넘게 벌어진 건 흔한 일이 아니다.

거래는 실종된 반면 매물은 쌓이는 중이다.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은마아파트 매물 건수는 현재 194건으로 3개월 전인 127건과 비교해 52.7% 증가했다. 강남구 아파트 단지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내홍에 휩싸인 은마, 재건축은 도대체 언제쯤?

은마가 이 지경이 된 이유 중 하나는 조합 내 갈등 때문이다. 속히 조합설립인가를 받고 재건축 사업 진도가 나가도 시원치 않을 판에 조합 내 내홍이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은마아파트에선 현재 조합과 비대위격인 은마소유자협의회(은소협)가 법적 공방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8월 열린 은마아파트 재건축 조합설립과 조합장 선출 총회에서 최정희 조합장이 당선됐는데 은마소유자협의회 측이 투표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이 이를 인용했다. 조합장의 직무가 정지된 것이다.

쌍방은 대리인단을 선임해 법적 공방 중이나 은마아파트 재건축 사업은 올 스톱 상태다. 당장 1월 말 서울시에 제출 예정이던 49층 변경안도 무산됐고 병행해 준비 중이던 건축심의도 중단됐다.


분담금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중

주민들 사이에선 추가 분담금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일대 중개업소에 따르면 전용 76㎡ 소유자가 84㎡를 받을 경우 3억5000만~4억 원 부담할 것으로 보인다. 은마의 경우 소형 평형 위주로 구성돼 있는데다 공사비가 무섭게 치솟고 있어 조합원 분담금이 향후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재건축 사업은 속도가 생명인데 속도가 한도, 끝도 없이 지체되면서 은마 조합원들의 분담금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중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내 나이가 80살인데, 재건축을 포기하겠다’며 소유 주택을 싸게라도 매각하려는 노인의 사연도 소개되고 있다.


부동산 대세하락기는 재건축 사업의 무덤임을 명심해야

강남 재건축의 상징인 은마아파트는 1996년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해 2003년 추진위원회가 결성됐다. 2010년 안전진단을 통과했다. 그리고 무려 13년이 지난 지난해 정비계획안이 서울시 심의를 통과했다. 계획안에 따르면 기존 14층, 28개 동, 4424가구였던 아파트는 35층, 33개 동, 5778가구로 탈바꿈한다. 2027년 착공해 2030년 입주가 목표다.

조합원들이 꿈에 부풀었던 것도 잠시, 은마는 조합 내 지독한 내홍과 분담금 폭탄, 그리고 부동산 대세하락기라는 삼중의 적과 맞닥뜨렸다. 은마가 이 적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어쩌면 지금이라도 소유하고 있는 주택을 매물로 처분하려는 80살 노인의 결정이 현명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민언론 민들레 2024년 3월 25일>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