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청약통장, 또 윤석열표 집값 띄우기인가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윤석열 정부가 청약 주거대책의 일환으로 청년 청약통장을 만들었다. 이 통장에 가입해 주택을 분양받으면 주택담보대출을 파격적인 저리에 제공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청년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청년 청약통장은 기실 소득이 어지간히 되는 청년들마저 빚내 집을 사라며 주택시장으로 초대하는 집값 떠받치기 성격이 짙다. 이미 윤 정부는 신생아 특례대출 확대정책을 통해 저출산 대책으로 포장된 집값 부양책을 천명한 바 있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윤 정부는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를 사실상 폐기해 집부자들에게 매년 목돈을 실질적으로 선사했다. 부자들에겐 감세조치를 통해 가처분소득을 늘려주고, 신생아 특례대출과 청년 청약통장을 통해 무주택자와 청년들마저 빚내 집을 사라고 유인하는 정부는 건국 이래 최초가 아닐까 싶다.
이젠 34세 이하 청년들마저 빚내 집사라고 유인하는가?
정부와 국민의힘은 23일 국회에서 회의를 열어 ‘청년 내집 마련 123 주거지원 프로그램’을 확정했다. 이 프로그램은 기존의 ‘청년 우대형 주택청약 종합저축’을 확대 개편한 ‘청년전용주택드림 청약통장’에 34세 이하 청년 중 연 소득 5천만원 이하(기존은 연소득 3천500만원 이하)인 청년이 가입을 하고, 이 청약통장을 통해 주택 청약에서 당첨되면 분양가의 80%까지 연 2%대 고정금리로 주택담보대출(청년주택드림대출)을 받을 수 있는 것이 골자다. 결혼·출산·다자녀 등 요건을 충족하면 추가 우대금리가 적용돼 금리가 더 낮아진다. 또한 당해 통장 가입시 제공되는 금리가 4.5%로 상향되며, 납부 한도 역시 월 5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늘어난다.
기존 청년 우대형 주택청약 종합저축 가입자는 새 청약통장으로 자동 전환되고, 기존 가입 기간과 납입 횟수는 모두 인정받는다.
만기가 최장 40년으로 고정·저금리가 적용되는 청년주택드림대출은 2025년 출시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연간 10만명 안팎이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추산하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회의 모두발언에서 이번 무주택 청년 주거지원 확대 프로그램에 대해 “미래세대가 가장 불안해하고 고통을 겪고 있는 내 집 마련의 꿈을 응원하고 중산층이 두터운 사회로 가기 위해서”라며 “내 집 마련의 금융 기회를 제공하는 파격적인 정책”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는 청년 청약통장이 무슨 대단한 청년 주거정책이라도 되는 듯 포장하고 있지만 기실 이 대책은 연소득 5천만 원 이하를 버는 34세 청년들을 상대로 ‘장기 저리의 빚을 내게 해주겠으니 어서 빚을 내 집을 사라’는 꼬드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청년 청약통장 직전에 나온 신생아 특례대출
주목할 건 청년 청약통장 이전에 나온 신생아 특례대출이다. 국토부는 내년에 26조 6000억 원의 신생아 특례구입대출 예산과 7조 6000억 원의 신생아 전월세 특례대출 예산을 각각 마련해 집행할 예정이다.
윤석열 정부가 내년 신설하는 신생아 특례대출은 저출산 대책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윤석열표 특례보금자리론(목표 금액 39조 6000억 원)과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의 계승자 느낌이 매우 짙다. 올 상반기 집값 반등을 이끌었던 특례보금자리론과 50년 만기 주담대가 가계부채 폭증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특례보금자리론과 50년 만기 주담대를 통제할 수 밖에 없는 처지로 몰린 윤 정부가 특례보금자리론과 50년 만기 주담대의 뒤를 이어 집값을 떠받치기 위한 유동성 공급의 역할을 신생아 특례대출에 부여했다고 봄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신생아 특례대출만으로는 불안했는지 이번에는 청년 주거지원 운운하며 청년 청약통장을 만들어 34세 이하 청년들마저 집값 떠받치기를 위해 동원하는 모양새가 역력하다.
무주택자와 청년에겐 빚을, 집부자에겐 감세를 각각 선물하는 윤 정부
무주택자와 청년에게 빚을 내 집을 사라고 꼬드기는 윤 정부는 그러나 집부자들에겐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를 사실상 폐지해 매년 목돈을 선사한 바 있다.
윤 정부는 21일 내년도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올해와 동일한 69.0%(공동주택 기준) 수준으로 동결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국토교통부는 21일 중앙부동산가격공시위원회에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재수립 방안’을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임 문재인 정부가 한국사회의 오랜 숙원을 수용해 만든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사실상 폐기하는 수순에 돌입한 것이다.
부동산 공시가격은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양도세 등 부동산 관련 각종 세금의 과표 역할을 한다. 윤석열 정부가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작년과 올해 연달아 2020년에 맞춰 동결한 덕에 부동산 부자들은 두 해 연속으로 적게는 수백 만원에서 많게는 수천 만원에 달하는 세금을 아낄 수 있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가처분 소득의 증가로 귀결되었다.
윤 정부는 더 나아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형해화하려 획책 중인데, 이렇게 되면 앞으로도 부동산 부자들은 매년 수백 만원에서 수천 만원의 현금이 호주머니에 꽂히는 것과 같은 혜택을 누리게 된다.
무주택자와 청년들에겐 빚을 권하고, 부동산 부자들에겐 감세를 선물하는 윤 정부를 보면서 전대미문의 정부라는 생각이 드는 건 자연스럽다.
구매가능한 수준으로의 집값 하락이 최고의 청년 주거대책
특례보금자리론 및 50년 만기 주담대에 대한 통제가 강화된 시점에 부동산 시장이 일시적 반등을 멈추고 2차 조정에 돌입한 것은 약물을 끊은 운동선수의 성적이 곤두박질치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이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윤 정부가 시장의 2차 조정이 시작되는 시점에 맞춰 신생아 특례대출과 부동산 공시가격 동결,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 폐기, 청년 청약통장 대책 등을 차례로 내놓으며 부동산 시장의 2차 조정을 저지하거나 조정 폭을 좁이려고 혈안이 돼 있다는 사실이다.
최고의 저출산 대책이자 최선의 청년주거 대책은 말 그대로 미친 집값이 구매가능한 수준으로 충분히 떨어뜨리는 것이다. 집값이 부담 가능한 수준까지 내려오면 정부가 등 떠밀지 않아도 시장참여자들이 알아서 집을 구매할 것이다. 부담 가능한 수준의 자가 소유자들이 증가하면 민간임대차 시장에서도 임대인의 우월적 지위가 약화되어 전월세 가격도 하락 압력을 받게 마련이다. 한 마디로 매매시장과 임대차 시장이 건강한 균형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공공임대주택의 지속적 확충이 병행되면 금상첨화다.
최선의 청년 주거 대책, 최고의 저출산 대책이 무엇인지 이미 정답이 나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사코 오답만을 고집하는 윤석열 정부에게 무슨 말이 더 필요할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윤 정부가 고집하는 오답이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