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위협하는 유가와 곡물가의 역습

 

 

 

 

 

인플레이션 위협하는 유가와 곡물가의 역습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미국의 개인소비지출(PCE)이 추세적으로 하락 중이다. 근원 개인소비지출도 내려오고 있는 터라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고, 연준(Fed)의 기준금리 인상도 종결된 것으로 전망함직하다. 하지만 고개를 들고 있는 국제 유가와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국제 곡물가를 보면 생각이 복잡해지지 않을 수 없다.


시장의 전망치를 하회한 미국 개인소비지출

현지 시각 28일 미 상무부에 따르면, 에너지와 식료품 가격을 포함한 6월 PCE 가격지수는 전월비 0.2%, 전년 동기비 3.0% 상승했다. 전년동기비로는 전달 기록한 3.8%보다 상승 폭이 줄었다.

또한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6월 근원 PCE 가격지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4.1% 올랐는데, 이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시장 예상치인 4.2% 상승과 전달의 4.6% 상승에서 둔화한 것이다. 4.1% 상승률은 2021년 9월 이후 최저이다.

한편 올해 2분기 고용비용지수(ECI)는 계절 조정 기준 전 분기 대비 1.0% 상승하는 데 그쳤는데, 이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이코노미스트 예상치인 1.1% 상승과 올해 1분기 수치인 1.2% 상승을 밑돈 것이다. 고용 비용은 임금과 기타 보상 등을 포함하는 지표로 그동안 고용 비용은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올해 2분기 고용비용지수는 전년 대비로는 4.5% 올라 전 분기의 상승률 4.8%보다 둔화했으나 근원 PCE 가격지수 상승률인 4.1%를 웃도는 수준을 보였다.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빠르게 내려오는데다 연준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인소비지출(PCE)도 시장 예상치를 하회하고 있어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랠리 종료 기대가 커지고 있다. 물론 여전히 근원PCE가 연준의 목표인 2%의 두배가 넘는 만큼 연준의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이 사라진 건 아니다.

게다가 근래 인플레이션의 빠른 하락에 가장 큰 공헌을 세웠던 유가와 곡물가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수행 중인 연준 등 각국의 중앙은행들로선 악재가 아닐 수 없다.


마침내 80달러를 돌파한 국제유가

27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9월 인도분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1.31달러(1.66%) 오른 배럴당 80.0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북해산 브렌트유는 전장보다 1.23달러(1.49%) 상승한 배럴당 83.79달러에 거래됐다. WTI 가격이 배럴당 80달러 선을 돌파한 것은 지난 4월 18일 이후 처음이다.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오펙 플러스(OPEC+)가 원유 감산 등을 통해 글로벌 공급량을 조절하면서 최근 한 달 사이 WTI 가격은 꾸준히 상승했다. 지난달 27일 배럴당 67.70달러였던 WTI 가격은 이달 7일 배럴당 73.86달러, 13일 배럴당 76.89달러, 25일 배럴당 79.63달러까지 치솟으며 80달러대에 근접하다 드디어 80달러를 터치했다.

국제원유가격이 추세적 상승을 이어가자 미국의 휘발유 가격도 빠르게 상승 중이다. 26일(현지시간) CNN은 미국자동차협회(AAA)의 자료를 인용해 이날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이 전날대비 5센트 오른 1갤런 당 3.69달러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3개월 만에 최고치이자, 가격 상승폭도 지난해 6월 이후 하루 최대다. 휘발유 가격은 전날에도 4센트 올랐다.

미국의 휘발유 가격은 지난해 6월 갤런 당 5.016달러까지 치솟았지만, 이후 하락세를 보인 뒤 올해 들어서는 3.5달러대 초반에서 안정세를 유지했다. 일각에선 경기회복, 기후 변화 등의 요인이 겹치면서 휘발유 가격이 갤런 당 4달러를 돌파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어디까지 상승할지 알 수 없는 곡물가격

유가와 함께 물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제 곡물가도 들썩이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BOT) 선물 시장에서 밀 가격이 지난 25일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중단과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시설에 대한 잇따른 공습으로 주요 밀 생산국인 우크라이나의 수출이 불안정해졌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은 흑해곡물협정 파기로 전세계 곡물가격이 최대 15%까지 오를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국제 밀가격 추이



우크라이나 전쟁만 곡물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기후위기도 곡물 가격 상승을 견인 중이다. 올봄부터 시작된 유럽의 이례적인 폭염에 올리브유 가격이 사상 최고치로 치솟았고, 쌀, 팜유, 카카오 시장가격도 끝 모르고 상승 중이다. 이미 세계 최대 쌀 수출국인 인도는 물량 절반에 대해 수출 금지 조처를 내린 바 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에서는 남부와 서부를 중심으로 극심한 폭염이 강타하면서, 생산량 감소 우려로 콩을 비롯한 기타 곡물의 가격들도 폭등 중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극심한 기후위기가 글로벌 식량공급망을 교란시키고 있는데, 문제 해결이 쉬워 보이지가 않는다.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서 승전을 선포하기에는 복병 남아

유가와 곡물가의 상승이 곤혹스럽기 그지없는 건 필연적으로 상품물가의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연준은 서비스물가를 잡는 것도 힘겨워 하는 마당인데, 만약 유가와 곡물가가 상승해 상품물가를 밀어올린다면 연준으로선 상품물가와 서비스물가를 모두 잡아야 하는 양면전선으로 몰리게 된다. 이런 사태의 전개는 연준 입장에선 악몽이다.

분명한 건 유가와 곡물가 상승이 추세적으로 이어진다면 연준이 수행 중인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이 훨씬 길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동시에 긴축적 통화정책도 시장의 기대 보다 한결 오래 지속될 것이다.

 



<시민언론 민들레 2023년 7월 30일>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