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의 가격통제 비웃듯 폭등하는 라면값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윤석열 정부가 물가 폭등의 주범으로 지목(?)하며 가격 인하를 강력하게 요구한 라면값이 되레 2009년 이후 월간 최고 상승률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라면값 인하를 위해 총대를 멘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퍽 민망할 듯싶다. 윤석열 정부는 가격 인하 요구에 실질적으로 불응하고 있는 라면업계에게 공권력의 지엄함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윤 정부를 비웃듯 하늘로 날아오른 라면값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6월 라면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23.95로 작년 같은 달과 대비해 무려 13.4% 상승했다. 이는 지난 2009년 2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4년 4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이며, 5월의 13.1%보다 더 높다. 라면의 물가 상승률은 전체 물가 상승률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커, 지난달 두 상승률의 격차는 10%p 이상 벌어졌다.
정부가 라면값에 몰두한 텃인지 여름철 대표 식품인 아이스크림은 인하 발표조차 없이 큰 폭으로 오르고 있다. 빙과 업체들은 라면, 제과, 제빵 업체들과는 달리 정부의 가격통제에 모르쇠로 대하고 있다. 6월 아이스크림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19.98로 작년 같은 달 대비 9.4% 상승했다.
윤석열 정부가 가격통제라는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서까지 라면값 인하에 쏟은 정성이 무색해지는 성적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라면업계는 윤 정부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라면값 인하를 선언한 바 있다. 농심은 이달 1일부터 신라면 출고가를 4.5% 내렸고, 삼양식품은 삼양라면, 짜짜로니 등 12개 제품의 가격을 평균 4.7% 인하했다. 또한 오뚜기가 스낵면, 참깨라면 등 15개 제품 가격을 평균 5.0% 내렸으며, 팔도도 일품해물라면, 왕뚜껑봉지면 등 11개 제품 소비자 가격을 평균 5.1% 인하했다.

그렇다면 7월부터는 라면값이 확실하게 떨어질 것인가? 전망은 어둡다. 우선 농심 안성탕면, 삼양식품 불닭볶음면, 오뚜기 진라면, 팔도 비빔면 등 주력 제품이 인하 대상에서 빠진 상태다. 앙꼬없는 찐빵이 생각나는 형국이다.
그뿐이 아니다. 라면 구매패턴을 보면 라면 한 개 가격을 조금 내리는 것이 전체 라면값 인하에 거의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쉽게 알게 된다. 모두가 경험해 봐서 알겠지만, 라면을 한 봉지만 사는 소비자는 드물다. 통상은 라면 5봉지를 묶은 이른바 ‘번들 (bundle) 제품’으로 사는 경우가 압도적이다. ‘번들 제품’의 할인 폭은 라면 회사의 판매 전략과 유통사의 협상력에 의해 좌우되는데, 라면 회사 쪽에서 번들 제품의 할인 폭을 줄이거나 끼워주는 라면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단위 당 라면값 인하분을 흡수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윤 정부, 가시적인 라면값 인하에 명운 걸려
윤석열 정부가 라면업계를 상대로 가격 인하라는 극약처방을 내린 마당에 라면업계의 교활한(?) 꼼수에 막혀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국민들이 윤 정부를 어떻게 볼 것이며, 윤 정부의 위엄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윤 정부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폭등 중인 라면값을, 소비자들이 효능감을 느낄 정도로 떨어뜨려야 할 것이다. 그게 윤 정부가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서 확실한 승기를 잡았다는 증거이며 정부의 가격통제를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기업들에 대한 준엄한 경고가 될 것이다.
만약 라면업계의 면종복배(面從腹背)를 못 본 척 방치한다면 윤 정부가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의지가 있는지를 의심받음과 동시에 노조와 기업을 차별적으로 대한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윤 정부가 건설노조를 다루는 수단의 십분의 일만 사용해도 라면업계는 윤 정부의 뜻을 헤아리고 소비자들이 실질적이고도 즉각적인 효능감을 느낄 수준의 라면값 인하를 단행할 것이다. 윤 정부의 결단이 심판대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