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칼럼] 자유경제 외치며 라면·밀가루값 옥죄는 윤 정부

 

 

 

자유경제 외치며 라면·밀가루값 옥죄는 윤 정부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윤석열 정부가 라면값 인하를 업계에 강력히 주문한데 이어 제분업계에 밀가루값 인하까지 주문하고 나섰다. 라면업계와 제분업계는 원가상승 요인이 여전해 정부의 주문에 응하기도 힘든 형편이라 울고 싶은 심정이다. 더 나아가 특정 상품의 가격결정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과연 시장경제인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생긴다.


라면값 인하에 총력을 경주하는 윤 정부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8일 한국방송(KBS) <일요진단> 프로그램에 출연해 ‘라면업체들이 라면값을 내려야 한다’고 요구한 뒤, 라면업체들은 사면초가의 처지로 몰렸다.

추 부총리는 그날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작년 9월, 10월에 라면값을 크게 올렸는데 (…) 1년 전 대비 약 50% 밀 가격이 내렸고 작년 말 대비로 약 20% 정도 내렸습니다. (…) 제조업체에서도 밀가루 가격으로 올랐던 부분에 관해서는 다시 적정하게 가격을 좀 내리든지 해서 대응을 해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마는…”

물론 추 부총리가 단서를 달긴 했다. “정부가 원가조사를 하고 가격을 통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소비자단체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견제도 하고 가격 조사도 해서 압력을 좀 행사하면 좋겠는데…”라고 슬쩍 공을 소비자단체에 던졌다. 하지만 추 부총리의 발언 직후 주식시장에서 농심 등의 주가가 폭락한데서 알 수 있듯 시장은 이미 정부가 라면업체의 가격인하를 직간접적으로 강제하고 있다고 인식 중이다.

곤혹스럽기 그지없는 처지에 몰린 라면업계도 할 말은 많다. 라면업계에 따르면 라면의 원가 구조에 대한 업계 추정치는 밀가루 20%, 팜유 20%, 마케팅·물류·판촉활동비 20~25%, 야채스프 등 기타 재료 10~15%, 포장재 20~25% 수준이라 한다. 라면 원가의 40%가량을 차지하는 밀가루와 팜유 국제 시세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여파로 치솟았다가 올해 들어 가격이 일부 안정화됐다. 문제는 밀가루 등의 국제 시세가 낮아진 것은 맞지만 제조비 감축으로 이어지려면 최소 6개월 이상 지나야 한다는 점이다. 라면업계는 또한 전분, 스프 등 기타 재료와 물류비, 인건비, 포장비 등 원가부담은 여전하다고 주장한다.


이번엔 밀가루 가격을 내리라고 제분업계를 압박하는 윤 정부

라면업계가 국내 제분업체들로부터 공급받는 밀가루 가격이 전혀 내리지 않고 있다고 말하자 윤 정부는 이젠 제분업계에게 밀가루 가격을 내리라고 압박 중이다.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는 전날 대한제분·CJ제일제당·삼양사 등 10여 개 국내 제분 업체에 ’26일 업계 간담회 개최’ 관련 공문을 보냈다. 주무 부처는 여러 얘기를 하고 있지만 밀가루 가격인하와 관련해 “밀 선물 가격이 지난해 5월부터 계속 낮아지고 있으니 이를 고려해서 밀가루 가격을 책정해달라는 협조 요청의 목적도 있다”고 밝히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분업계도 억울해하긴 마찬가지다. 제분 업계는 “국제 밀 가격이 내린 것은 맞지만, 이런 내림세가 곧바로 밀가루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고 주장하는데, 일리가 있는 말이다. 국제 밀 가격은 시카고 선물거래소 가격 기준으로, 실제 수입과 최소 6개월 가량의 시차가 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필 국제 밀 값이 6월 들어 큰 폭으로 반등하고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밀가루 원료인 원맥을 벌크선으로 수입하는데, 이 과정에서 운송비·인건비·통관비가 추가로 들어간다”며 “원맥 가격에 비해 수입 통관 가격은 크게 내려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주요 먹거리 물가 상승률

 


제분업계의 주장은 사실에 부합한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제분용 밀의 수입 가격은 지난 2021년 6월 ㎏당 361원에서 지난해 9월 681원으로 89%가 올라 가장 높은 가격을 형성한 뒤, 조금씩 내려 지난달 562원을 기록했다. 최고치 대비는 17.4% 하락했지만, 2년 전보다는 오히려 55.6% 올랐다. 수입 가격은 수입 물품 가액에 운임·보험료·관세 등을 합친 금액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분업계도 덮어 놓고 정부의 밀가루값 인하 요구에 응하는 게 녹녹치 않은 실정이다.


윤 정부가 생각하는 시장경제는 과연 무엇인가?

라면의 소비자물가지수 가중치는 1000분의 2.7로 외식전체(126.7), 휘발유(20.8), 전기요금(15.5), 돼지고기(10.6)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윤 정부가 정녕 시민들의 소비자물가 부담이 근심된다면 애먼 라면과 밀가루 가격을 억지로 누르려고 할 것이 아니라 덩치가 라면이나 밀가루와는 비교불가인 휘발유 값, 전기요금, 가스요금, 교통요금 등의 인상을 억제하거나 가격 인하 요인이 있으면 인하하는 것이 옳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윤석열 정부가 생각하는 시장경제가 무엇인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 시장경제에서 독과점, 투기, 정보의 극단적인 비대칭 등의 시장교란요인이 발생하지 않는 한 시장경체의 주체 중 하나인 기업이 특정 상품의 가격을 결정하는데 정부는 개입해선 안 된다. 특정 상품에 대한 정부의 섣부른 가격결정 개입은 오히려 소비자 후생을 침해하고 불측의 부작용을 낳게 마련이다. 이걸 아는지 모르는지 윤 정부는 라면값과 밀가루값 결정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이쯤 되면 입만 열면 자유시장경제를 외치는 윤석열 대통령 이하 윤 정부 인사들이 생각하는 자유시장경제의 정체와 원리가 무언지 정녕 궁금해진다.

 

 

 

 

<시민언론 민들레 2023년 6월 7일>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