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집값 떠받치기’ 직격한 금통위…”대출 또 급증”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잠시 주춤했던 가계대출이 윤석열 정부의 집값 떠받치기에 힘입어 다시 크게 늘어나고 있다. 통화정책을 책임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과도한 가계부채 등으로 인해 디레버리징이 절실한 상황에 윤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등이 통화긴축의 효과를 상쇄시킬 가능성이 있음을 공개적으로 지적하고 나섰다.
디레버리징 물거품 될 상황 염려하는 금통위
19일 한은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관련 부서와 복수의 금통위원들은 윤 정부의 집값 떠받치기를 위한 과도한 부동산 규제 완화가 가계대출 감축을 방해하고, 이는 곧 디레버리징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음을 지적했다.
먼저 한은 관련 부서는 금통위원들에 대한 의견 제시에서 “최근 부동산 규제 완화는 금융 불안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으나, 금융불균형 해소를 지연시켜 중장기 거시경제와 금융안정을 저해할 수 있으므로 해당 리스크 요인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은이 선진국보다 앞선 2021년 8월 금리 인상기에 돌입하면서 그 이유로 우리 경제에 누적된 금융불균형(과도한 레버리지 사용과 부동산 등 자산가격 급등)을 든 사실이 있다. 즉 한은이 선제적으로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한 주된 이유가 바로 선진국 중 최고 수준인 가계대출의 축소였다. 한데 현실은 한은이 목표로 했던 가계대출 축소(디레버리징)가 전혀 달성되지 않고 있다.
금통위 회의에 참석한 한 금통위원은 사상 유례없이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에도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감축은 거북이걸음이라고 지적하며, “고금리 정책으로 전 세계적인 가계부채의 디레버리징이 진행되는 중에도 우리나라와 일본은 디레버리징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은행 가계대출 증감 추이
또한 이 위원은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기준금리 인상이 가계부채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주택시장 연착륙 목적의 정책 시행으로 가계대출이 늘어나면서 정책 간에 상충이 발생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강조하며, 집값 떠받치기 목적의 가계대출 증가가 디레버리징을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위원도 “시장금리가 과도하게 낮아지면서 금융긴축 정도를 약화시키고 통화정책의 효과를 일정 부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면서 “낮은 금리와 함께 최근 주택경기 하락세가 둔화되면서 주택담보대출 등 은행의 가계대출이 증가세로 전환됐는데 이는 앞으로 가계부채 관리 등 향후 경제운영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주범은 특례보금자리론과 당국의 금리인하 압박?
금통위가 디레버리징 실패를 근심하는 데에는 명백한 근거가 있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3월까지 감소세였던 은행권 가계대출은 4월에 증가세로 돌아선 데 이어 지난달에는 4조 2000억 원 증가했다. 이는 지난 2021년 10월(5조 2000억 원) 이후 1년 7개월 만에 최대폭 증가다. 은행권 가계대출이 크게 늘어난 주된 까닭은 특례보금자리론 등 부동산 부양책에 따라 전세자금대출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807조 9000억 원)이 4조 3000억 원 늘어난 데에 있다.
사정이 이쯤 되자 한 금통위원은 특례보금자리론을 콕 집어 “4월 들어 금융권 가계대출이 증가로 전환한 데는 시장금리가 하락한 점도 영향을 미쳤겠으나 특례보금자리론 실행의 영향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특례보금자리론 시행 초기에는 변동금리를 고정금리로 바꾸는 대환 대출이 많았던 것으로 아는데 최근에는 해당 정책이 신규 대출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주택시장 연착륙 목적이 어느 정도 달성된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특례보금자리론 한도가 신규로 과도히 늘어나지 않도록 정책 당국과 잘 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에 한은 관련 부서는 “특례보금자리론(약 40조 원)의 80% 정도가 소진된 상황”이라면서 “특례보금자리론 실행은 주택시장의 연착륙에 초점을 둔 정책이기 때문에 가계부채 누증에 따른 금융 불균형을 우려하는 중장기적 시계에서의 정책 목표와 일부 상충되는 측면이 있을 수 있다”고 화답했다.
금감원 등 금융당국이 은행에 금리 인하를 압박하면서 은행들이 금리를 낮춘 것도 가계대출 증가에 악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꼽힐 만하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결단을 기대한다
한편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12일 한은 창립 73주년 기념식에서 “중장기적 시계에서 금융불균형이 재차 누증되지 않도록 유관기관과 협력해서 가계부채의 완만한 디레버리징 방안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 총재의 발언을 거꾸로 뒤집으면 현재까지 가계부채 디레버리징이 성공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또한 한은은 지난 8일 발간한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서도 금융불균형을 지적한 바 있다. 보고서는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등 영향으로 올 들어 주택가격 하락세가 빠르게 둔화되고 주택 관련 대출을 중심으로 은행의 가계대출도 재차 증가함에 따라 가계부채 디레버리징이 지연될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면서 “주택가격은 여전히 소득 수준과 괴리돼 고평가돼 있고 가계부채 비율이 매우 높아 디레버리징이 앞으로도 중장기에 걸쳐 꾸준히 지속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경제의 거시건전성과 지속가능성을 감안할 때 지금은 경기하방에 대한 고려보다는 가계부채 축소에 방점을 찍어야 옳다. 한은은 다음 금통위에서 윤 정부의 눈치를 보지 말고 가계부채 축소를 위한 기준금리 인상을 결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