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전세·역전세 쓰나미가 몰려온다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깡통전세와 역전세의 공포가 심화되는 가운데 한국은행이 이를 경고하는 보고서를 내놨다. 한은은 최근 발행한 「국내외 경제 동향 및 전망」에 수록된 〈깡통전세·역전세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공포의 쓰나미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깡통전세 및 역전세의 충격적인 현실
한은에 따르면 기존 전세가격이 현 매매가격보다 높은 ‘깡통전세 위험가구’는 16만 가구, 전세가격 하락으로 기존 전세보증금보다 낮아진 ‘역전세 위험가구’는 102만 가구를 넘어섰다. 특히 위험가구의 비중이 전국적으로 무섭게 증가하고 있다. 22년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잔존 전세계약 중 깡통전세 위험가구 비중은 2.8%(5.6만 호)에서 8.3%(16.3만 호)로, 역전세 위험가구 비중은 25.9%(51.7만 호)에서 52.4%(102.6만 호)로 각각 폭증했다.
그나마 서울의 깡통전세와 역전세 비중은 각각 1.3%(7000가구), 48.3%(27만8000가구)에 그쳤지만, 비수도권은 각 비중이 14.6%(9만 7000가구)·50.9%(33만 8000가구), 경기·인천은 6.0%(4만 3000가구)·56.5%(40만 6000가구)로 나타났다. 역전세 비중이 50%를 넘어섰다는 건 전세 주택 2가구 중 1가구는 역전세 위험에 노출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림 1〉은 깡통전세 및 역전세 현황을 잘 보여준다.

이 위험가구들이 얼마나 위험한 상태에 놓여있는지를 체감하기 위해서는 금액을 봐야 한다. 한은 보고서에 따르면 4월 기준 깡통전세의 매매시세는 기존 전세보증금보다 평균 2000만원, 역전세의 경우 시세보다 7000만원 정도 낮았다. 또한 깡통전세 상위 1%는 집값하락으로 현 매매가격이 기존 전세가보다 최대 1억원이나 낮았고, 역전세 상위 1%가 세입자에게 돌려줘야하는 전세보증금 차이는 무려 3억 6000만원까지 벌어졌다. 한 마디로 말해 깡통전세 및 역전세에 놓인 집주인들은 결국 집을 팔거나 빚이라도 내서 전세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 형편에 몰려 있다.
지옥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지금이 바닥이면 그나마 견딜만할 테지만 불행하게도 통계는 전혀 그렇지 않음을 시사하고 있다. 한은 보고서는 4월 현재 깡통전세 계약 중 금년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에 만기도래하는 비중이 각각 36.7%, 36.2%이며, 역전세는 29.3%, 30.8%인 것으로 분석했다. 〈그림 2〉는 이를 잘 보여준다.

설상가상으로 신고된 거래만을 대상으로 추정한 잔존 전세계약 수(지난해 평균 약 200만 건)는 전체 잔존 전세계약 수(2020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약 325만 건)에 아득히 미치지 못한다. 쉽게 말해 통계에 잡히지 않아서 그렇지 깡통전세 및 역전세의 위험성과 파괴력이 훨씬 강력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갭 투기가 극성을 부리던 시기가 2021년 여름부터 2022년 상반기까지였음을 감안할 때 지금의 깡통전세 및 역전세의 역습은 예견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올 하반기 입주 예정인 아파트 물량만 해도 16만 6000여 가구로 역대 급이다. 여기에는 빌라나 연립 등의 물량은 제외됐다.
빚내줄 결심을 한 윤 정부
한편 역전세의 공포가 덮쳐오자 윤석열 정부는 대출을 풀어 역전세에 대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역전세로 인해 부동산 시장과 국민의 경제생활에 큰 혼란이 있어선 안 된다는 문제 인식 아래, 전세금 반환 보증과 관련된 대출에서 어려움을 겪는 분(임대인)을 위해 제한적으로 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기재부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국토교통부 등이 함께 실무 검토에 나설 예정이며 좋은 방안을 마련해 국민께 소개하겠다”고도 덧붙였다. 윤 정부의 경제 정책 사령탑인 추 부총리가 역전세 문제와 관련해 범정부 차원에서 대출 규제 완화를 검토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가뜩이나 가계부채가 대한민국 경제의 숨통을 조이는 마당에 윤 정부가 역전세난에 대한 대책이랍시고 내놓은 게 고작 ‘빚을 내게 해 줄 테니 빚내서 보증금을 돌려줘라’는 말이다. 가계 대출의 증가와는 별개로 전세 퇴거 자금용 주담대 규제 완화는 집값 상승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윤 정부는 도대체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다.
부동산 가격의 사이클 변동은 늘 있는 일이고 갭 투기 때문인지 여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깡통전세건, 역전세건 전적으로 임대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에 불과하다. 자기가 결정하고 자기가 그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근간이자 기본원리 아니던가? 입만 열면 시장경제를 외치는 윤석열 정부가 어째서 이런 자명한 이치조차 모르는지 정녕 알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