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칼럼]
약(弱)달러에도 평가절하되는 원화, 그 까닭은?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킹달러가 약세로 전환된 지 오래건만 주요국 통화 가운데 원화는 영 기운을 못쓰고 있다.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만성의 기미가 역력한 무역수지 적자와 한미간 기준금리 차이가 원화 약세의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원화의 추세적 약세는 수입물가 상승과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 자금 이탈을 초래할 악재다.
달러 대비 유독 약세를 보이는 원화
지난 4월 28일 원·달러 환율은 종가 기준 전 거래일(1338.0)보다 0.3원 내린 1337.7원에 거래를 마쳤다. 3거래일 만의 하락전환이지만, 26일에는 1340원을 돌파하기도 했는데, 환율이 장중 고가 기준으로 1340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 11월 29일(1342.0원) 이후 5개월 만이다.
원달러 환율이 불안한 이유 중 하나는 SVB파산 이후 다음 차례로 지목되던 미국의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에서 발생한 1000억 달러 이상의 뱅크런 사태로 보인다. 이로 인해 미국의 은행시스템의 불안정성이 부각되면서 달러 등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가 강해진 것이다.
문제는 꽤 오래전부터 주요국 통화 가운데 달러 대비 원화의 약세가 눈에 띄게 두드러졌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3월 10일부터 4월 25일까지의 기간에 한정해 보면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의 평균 가치를 표시하는 지표인 달러화지수(달러인덱스)가 104.58에서 101.35로 3.09% 하락(평가절상)한 반면, 대한민국은 오히려 –0.60%(평가절하)를 기록했다. 주요국 가운데 같은 기간 달러화 대비 가치가 떨어진 나라는 초인플레이션이 진행 중인 아르헨티나 페소화(-10%), 우크라이나 전쟁 중인 러시아 루블화(-5.84%), 튀르키예 리라화(-2.42%)뿐이다. 달러가 약세를 보이고 주요국 통화는 평가절상 되는 마당에 대한민국의 원화 가치는 달러 가치보다 더 빠른 속도로 추락한 것이다.
아래 〈그림 1〉을 보면 달러화지수와 원달러 환율의 추이를 알 수 있는데 놀랍도록 궤적이 같았던 달러화지수와 원달러 환율의 흐름은, 그러나 근래 들어 비동조화가 뚜렷하게 진행 중이다.

약한 원화의 주된 이유는 무역수지 적자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원화가 힘을 못 쓰는 이유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가 발표됐다. 한국은행 국제국 국제금융연구팀에서 4월 19일 〔원/달러 환율 변동성과 변화율의 국제비교〕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월 중 원화의 대미달러 환율 변화율은 7.4%로, 표본국가 34개국 평균(3.0%)의 2배를 넘어섰으며, 34개국 중 가장 높은 변화율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7.4%는 달러대비 평가절하율을 의미하는데 이는 미 달러화 지수(DXY)의 절상률 2.7%보다 현저하게 클 뿐 아니라 그 순위가 선진국과 신흥국을 포함한 전 세계 주요 34개국 통화 가운데 가장 높았다. 이를 달리 말하면 1월 말~2월 말 기준 표본국가 34개국 중에서 원화가 달러 대비해서 압도적으로 평가절하되었다는 뜻이다.
아래 〈그림 2〉를 보면 대한민국이 2월 중 환율 변화율 국제비교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여기서 1등을 했다는 건 명예가 아니라 오명이다.

출처 : 한국은행 블로그
한은은 원화가 약세를 면치 못하는 원인도 분석했다. 한은이 내외금리차 등 주요 대내외 변수로 구성된 VAR(벡터자기회귀) 모형을 구축해 분석한 결과 내외금리차와 무역수지(1개월 시차 존재)는 원화 환율에 음의 방향(절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정됨. 즉 미국과의 금리차가 적고 무역수지가 흑자를 기록할수록 원화가치가 달러 대비 높아진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최근 원화의 변화율이 상대적으로 확대된 데에는 미 연준의 통화정책 긴축과 함께 무역수지 악화가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적었다.
한편 보고서에 담긴 아래 〈그림 3〉을 보면 최근 무역수지가 악화된 대한민국, 태국, 남아공, 러시아, 아르헨 같은 나라들의 달러 대비 평가절하 폭이 컸음을 알 수 있다. 무역수지 적자가 원화 약세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난 2월(직전월이던 1월 우리나라의 무역수지는 125억1천만달러 적자로 적자 폭이 사상 최대 수준이었음)에는 무역수지 충격이 전체 변화율의 40% 정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출저 : 한국은행 블로그
개선될 기미를 찾기 힘든 무역수지
한미간 금리 차를 좁히기 힘들다고 전제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만성의 징후가 역력해지고 있는 무역수지를 하루속히 흑자로 돌리는 것뿐이다. 문제는 무역수지가 개선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4월 수출액(통관기준잠정치)은 496억 2000만 달러로 작년 같은 달보다 무려 14.2% 감소했다. 품목별로는 반도체(-41%)의 낙폭이 가장 크고, 국가별로는 중국(-26.5%)과 아세안(-26.3%) 등의 낙폭이 크다. 같은 기간 수입액은 522억 3000만 달러를 기록했는데 이는 작년 동월보다 13.3% 감소한 수치다.
4월 무역수지는 수입액 격감에 따라 26억 2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으며 그 중 대중 무역적자가 22억 7000만 달러다. 무역수지 적자의 압도적 부분이 대중 무역수지 적자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무역수지는 작년 3월부터 지난달까지 14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으며 대중 무역수지는 작년 10월부터 7개월 연속 적자상태다. 올해 누적 무역적자는 250억 6000만 달러로, 이는 작년 연간 무역적자(478억 달러)의 51.4%에 해당한다.
주지하다시피 원화의 추세적 약세는 환차손 등을 우려한 외국인 자금 이탈과 투자 억제를 야기하고 이는 다시 원화의 추가 약세로 이어진다. 또한 원화의 추세적 약세는 수입 물가를 높여 무역수지 적자 폭을 키울 것이다. 물론 원화 약세가 수출에는 일부 도움이 되겠지만, 글로벌 리세션이 가시화되는 마당에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대한민국 정부는 추세적 원화 약세를 탈피하기 위해 총력을 경주해야 하며, 그 첫 단추는 바로 무역수지의 개선이다. 대한민국 무역수지의 핵심은 대(對)중국 무역수지이며, 러시아와의 무역 규모도 상당하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대책도 없이 탈중국을 선언해 대중국무역수지 전선에 중대한 균열을 일으킨 후 양안(兩岸) 발언까지 폭주 중이다. 또한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군사지원 고려 발언을 해 러시아와는 자칫 적대 관계에 놓일 위험을 자초했다. 사면초가(四面楚歌)에 첩첩산중(疊疊山中)이란 표현이 절로 떠오르는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