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만에 정점 찍은 설탕값…’슈거’플레이션의 습격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슈거’플레이션이란 말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 중이다. 설탕 가격의 폭등이 인플레이션을 견인한다는 의미이다. 주지하다시피 설탕은 거의 모든 식음료에 들어가는 데다 빵, 과자, 아이스크림, 음료 등 가공식품에 없어서는 안 될 재료다. 가파르게 상승 중인 설탕 가격이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 시름을 더하고 있다.
12년 만에 최고점을 찍은 설탕가격
16일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달 세계 설탕 가격지수는 127.0으로 올해 1월(116.8)에 비해 약 9% 폭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격지수는 2014∼2016년 평균 가격을 100으로 두고 비교해 나타낸 수치다. 최근 6개월간의 변동을 보면 세계 설탕 가격지수는 지난해 10월 108.6에서 11월 114.4, 12월 117.2로 상승했고, 올해 1월 116.8로 잠시 주춤했다가 다시 2월 125.2, 3월 127.0으로 상승 중이다. 올해 3월 설탕 가격지수는 지난해 10월 지수와 비교해 무려 약 17%p 높다. 뿐만 아니라 2016년 10월 이후 최고치이기도 하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설탕 선물가격이다. 지난 11일(현지시간)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된 설탕 5월 선물가격은 톤(t)당 702.5달러를 넘겼는데, 이는 2011년 이후 12년 만에 처음으로 700달러 선을 돌파한 것이다. 또한 미국 뉴욕 국제선물거래소(ICE)에서 거래되는 원당(설탕 원료) 선물 가격은 지난 12일 파운드당 24.85센트까지 올라 2012년 3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 설탕 가격의 상승 원인은 인도, 태국, 중국 등 산지에서 생산량이 줄어들 것이란 전망에서 기인한다. 예컨대 브라질 다음으로 원당 생산량이 많은 인도는 최근 주요 생산지인 중서부 마하라슈트라주에 닥친 폭우로 곤욕을 치렀다.
치솟는 설탕가격이 가공식품 가격과 외식비 부담을 가중시킬 듯
문제는 설탕 가격 상승이 단지 설탕 가격 상승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세계 설탕 가격이 계속 상승하면 빵, 과자, 아이스크림, 음료 등 국내 가공식품에 가격 상승분이 전가될 수 밖에 없고, 자장면, 떡복이, 김치찌개백반 등을 포함한 외식비도 오를 수 밖에 없다.
18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지난달부터 베이커리 프랜차이즈들의 가격 인상 이후 세계 설탕 가격 폭등으로 인한 2차 가격 인상 요인이 발생하면서 추가 가격 인상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롯데GRS가 운영하는 크리스피크림 도넛은 지난달 23일부터 도넛 11종의 가격을 평균 4.6% 인상했고, 외식그룹 GFFG가 운영하는 도넛 브랜드 ‘노티드’도 지난달 초 제품 가격을 평균 12% 올렸다. 또한 CJ푸드빌이 운영하는 베이커리 브랜드 ‘뚜레쥬르’는 지난 8일부터 빵, 케이크 등 50여 개 품목 가격을 평균 7.3% 올렸고, SPC그룹의 파리바게뜨는 지난 2월부터 95개 제품을 평균 6.6% 인상했다.
베이커리 프랜차이즈들이 이미 단행한 가격인상에는 설탕가격의 폭등은 채 반영되지 않았다. 베이커리 프랜차이즈들이 설탕가격의 폭등에 부담을 느껴 이를 제품가격에 반영한다면 베이커리 프랜차이즈들의 제품 가격은 추가 인상이 불가피하다. 베이커리 프랜차이즈들이 제품 가격을 인상하면 이는 대형마트와 슈퍼마켓과 편의점 등에서 판매하는 이른바 양산빵 가격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설탕가격의 앙등이 빵 등 가공식품 가격 상승만 견인하는 것이 아니다. 설탕가격의 폭등은 외식물가 오름세에도 일조할 확률이 높다. 김치찌개백반부터 도시락에 이르는 39개의 외식물가품목 가운데 설탕에서 자유로운 품목은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외식 물가 상승률은 7.7%로 1992년 10.3% 이래 3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외식물가지수는 최근까지도 7% 아래로 떨어질 줄 모르고 있다. 여기에 설탕가격의 폭등까지 더해졌으니 외식물가지수의 하락은 고사하고 추가 상승 폭이 크지 않기만을 바라야 하는 처지가 됐다.
가뜩이나 힘겨운 물가와의 전쟁에 ‘슈거 플레이션’까지 내습(來襲)한 마당이니 지금의 상황을 설상가상(雪上加霜)에, 사면초가(四面楚歌)라고 불러도 지나치진 않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