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언론 민들레 칼럼]
둔촌주공의 청약 실패가 심상치 않은 이유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단지로 불리며 침체에 빠진 부동산 시장의 구원투수가 될 것으로 기대됐던 서울 둔촌주공(올림픽파크 포레온)이 청약에 실패했다. 둔촌주공의 청약 흥행 실패는 가뜩이나 수직낙하 중인 부동산 시장을 더욱 냉각시킬 것이며, 부동산PF 등의 경색을 야기해 중소형 증권사들을 유동성 위기로 몰아넣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입지·세대수에서 적수 없는 둔촌주공 청약이 왜?
9일 한국부동산 청약홈에 따르면 서울 강동구 둔촌동 올림픽파크 포레온은 1·2순위(해당 지역·기타 지역) 청약에 3695가구를 모집하였는데 2만 153명이 지원해 평균 경쟁률 5.45 대 1로 마감했다고 한다. 앞서 진행된 특별공급 청약에서는 1091가구 모집에 3580명이 신청해 평균 3.28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한 바 있다. 심지어 일부 타입은 순위 내 청약 마감에 실패하기도 했다. 둔촌주공의 계약기간은 다음 달 3일부터 17일까지인데, 미계약이 발생하면 무순위 청약이 실시된다.
둔촌주공은 송파구에 인접한 강동구라는 입지, 바로 옆에 올림픽공원이 붙어 있고 지하철 2개 노선이 통과하는 압도적 인프라, 미니신도시를 방불케 하는 1만 2000여 가구 등의 장점을 지닌 재건축 단지로 비록 부동산 시장이 대세하락 국면이라고는 하나 둔촌주공만은 흥행에 성공할 것이란 기대를 한 몸에 받아왔다. 그랬던 둔촌주공이 청약 흥행은 고사하고 자칫 미계약(미분양)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까지 몰렸다는 건 지금의 부동산시장 상황이 얼마나 엄혹한지를 잘 보여준다 할 것이다.
둔촌주공의 흥행 실패는 무엇보다 미 연준을 포함한 각국 중앙은행들의 금리인상 드라이브가 촉발한 부동산 시장의 대세하락 탓이 결정적이다. 지난 몇 년간 서울 등의 아파트 청약시장이 활화산처럼 뜨거웠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건 바로 주변 시세 대비 크게 저렴한 분양가로 인한 시세차익 기대감이다. 한데 둔촌주공은 주변의 랜드마크 단지들의 시세가 믿기 힘든 속도와 폭으로 떨어지면서 바로 그 시세차익에 대한 기대가 빠르게 허물어진 탓에 미분양 걱정을 해야 하는 처지로 몰린 것이다.
청약시장을 포함한 부동산 시장에 드리운 암울한 그림자
무너지는 시장이 버팀목이 되어 시장참여자들의 심리를 다소나마 회복시켜 줄 것으로 기대했던 둔촌주공이 속절없이 무너지면서 청약시장을 포함한 부동산 시장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이미 부동산 시장은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에 다름 아니다. 9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2월 첫째 주(5일 기준) 전국 아파트 매매수급지수(100을 기준으로 100 이상은 매도자 우위의 시장이고, 100 이하는 매수자 우위의 시장)는 73.1로 지난주(74.4)보다 1.3포인트(p) 떨어졌는데, 현재 시장은 역대 최저치가 매주 갱신되는 중이다.
가격하락폭도 무서울 지경이다. 8일 한국부동산원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12월 첫째 주(5일 조사 기준) 서울 아파트 가격은 전주 대비 0.59%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주 0.56% 감소 폭을 보인 데 이어 하락세가 커졌는데, 전국(-0.56%→-0.59%), 수도권(-0.69%→-0.74%)도 서울과 같은 처지다. 매매가격만이 아니다. 전세가격 하락세도 무섭다. 전국 주간 아파트 전세가격은 지난주(-0.69%) 대비 0.73% 하락하며 하락 폭이 확대됐으며 수도권(-0.95%→-1.00%), 서울(-0.89%→-0.96%)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부동산 시장이 급전직하를 거듭 중인 마당에 전해진 둔촌주공의 흥행 참패 소식은 시장참여자들의 마음을 더욱 움츠리게 만들 것이 자명하다. 시장은 심리인 까닭이다. 청약 시장은 충격과 공포의 쓰나미를 직격당했다. 둔촌주공조차 흥행이 어렵다면 다른 단지는 청약 흥행이 더 난망이기 때문이다.
둔촌주공발 부동산PF대란?
둔촌주공의 흥행 실패는 부동산PF를 포함한 자금시장의 경색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이미 둔촌주공이 7000억 원 규모의 PF 대출 만기를 앞두고 차환 실패 위기에 직면했다 채권시장안정펀드인 정부 지원 등을 받아 겨우 차환에 성공한 처지다. 둔촌주공조차 부동산PF 차환 발행에 쩔쩔매는 형국인데 해당 단지보다 입지가 떨어지는 다른 단지들의 부동산PF 차환 발행은 어떨 것인가?
만약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발(發) 유동성 악화가 현실화된다면 자기자본 대비 부동산 PF 비중이 높은 중소형 증권사들이 유동성 위기에 봉착할 수밖에 없고, 이는 최악의 경우 중소형 증권사 등을 포함한 기업 도산과 신용경색, 유동성 고갈 등으로 번질 수 있다. 자금경색과 원자재 가격 폭등에 더해 미분양 폭탄을 얻어맞을 가능성이 높은 건설사들의 도산과 그 도산이 초래할 금융 및 고용 충격은 별도다.
우리가 둔촌주공의 청약 흥행 실패를 가볍게 보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이렇듯 많다. 경제는 심리에 크게 좌우된다. 2014년 이후 부동산시장과 부동산 기반 금융시장을 지배했던 심리가 ‘탐욕’이라면 지금은 ‘공포’다. 김진태발 레고랜드와 흥국생명에 이어 둔촌주공이 시장참여자들의 공포를 더 심화시킬지 주목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