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알의 소리] 이재명 대통령께 드리는 편지
부동산에 ‘억강부약(抑强扶弱)’을 적용하지 않는다면,
이 정권과 나라의 미래는 없습니다!
― 부동산 대개혁에 성공하는 정부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씁니다
남기업 /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대통령님, 안녕하십니까? 인사드립니다. 저는 2005년부터 토지공개념과 주거권 실현을 목표로 연구 활동을 해 온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남기업입니다. 지난 20대 대선에서는 부동산개혁위원회에서 기본소득을 연계한 국토보유세와 토지임대부 분양주택 공약 설계에 참여했고, 지난 21대 대선에서는 기본사회위원회에서 기본주거본부장으로 활동했었으며, 대통령께서 경기지사일 때는 ‘부동산정책위원회’에 2년 동안 참여했었지요.
취임 초부터 저는 희망을 품었었습니다. 그러나 취임 후 세 번의 대책(6·27 대출규제 대책, 9·7 공급대책, 10·15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이 나올 때만 아파트값 상승세가 주춤하다가 다시 오르는 현상을 보며, 취임 첫해인 2025년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이 19년 만에 가장 높았다는 기사를 접하며, 그리고 작년 12월 5일 “제가 서울·수도권 집값 때문에 요새 욕을 많이 먹는 편인데 대책이 없다”, “있는 지혜와 없는 지혜를 다 짜내고, 모든 정책 역량을 동원해도 구조적인 요인이라 해결되지 않는다”고 대통령님께서 고충을 토로했을 때는 정말 불안이 엄습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올 1월 말부터 대통령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반드시 ‘부동산 불로소득 공화국’을 탈출해야 하며 이 탈출에 성공하지 못하면 나라의 미래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말입니다.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오직 주권자 국민만을 믿고 나아간다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피력하셨습니다. 저는 대통령님의 그 발언에 얼마나 가슴이 설레었는지 모릅니다.
‘문재인 시즌 2’가 되어가고 있는 부동산 시장
그러나 지난 7월 23일 국민 대토론회에서 목격한 대통령님의 표정과 발언에서는 안타깝게도 그러한 결기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지 않겠다던 다짐과 달리 표 계산을 염두에 두는 것처럼 느껴졌고, 오랫동안 부동산 욕망에 익숙해진 국민의 저항 때문에 개혁이 어렵다는 취지의 말씀에서는 국민에 대한 신뢰마저 흔들리고 있는 건 아닌지 깊은 우려가 들었습니다. 그래서 많이 괴로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8월 3일 발표된 세제개편안과 8월 13일 공급·금융 대책의 내용을 확인하면서 저는 깊은 시름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8·3 부동산 세제개편안은 ‘초고가 아파트’를 제외한 다수 주택 소유자들에게 거대한 감세 선물을 안겨준 정책이었습니다. 경제부총리가 직접 밝혔듯 30억 원 이하 주택의 세 부담을 덜어주어 상위 1%만을 과세 대상으로 남겨두었고, 종부세 공제액을 상향해 약 12만 호를 과세 대상에서 빼주었습니다. 실거주라는 명목으로 보유세와 양도세를 동시에 내려주어 상위 5분위를 제외한 대부분 주택의 기대수익률을 오히려 높여놓은 셈입니다. 이에 더해 실거주자 혜택에 몰두한 나머지 비거주 1주택자들이 임차인을 내보내고 집으로 들어가도록 유도함으로써 가뜩이나 불안한 한강 벨트 등 선호 지역의 전세난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정적 우를 범했습니다.
반면 8·13 부동산 대책은 시장이 기대하던 실효성 있는 공급 정책은 빠진 채, 정비사업장과 저가 주택시장으로 자금이 흘러 들어가도록 ‘대출 규제 완화’의 문을 열어준 대책으로 전락했습니다. 가계대출 증가 목표치를 풀고 정비사업 이주비와 집단대출의 숨통을 틔워준 조치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에 탄력을 붙여 주택 멸실에 따른 전세난을 자극할 것이 뻔합니다. 그리고 청년미래 보금자리론과 LTV 우대 배려는 저가 주택 매수세를 극대화하여 시장의 연쇄 가격 상승이라는 도미노 현상을 불러올 우려를 짙게 풍기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금은 깎아주고 대출 물꼬는 열어준 두 대책은 서울 아파트 시장을 극심한 불안 속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이미 토지거래허가구역과 규제 속에서도 강남·서초를 제외한 한강 벨트와 15억 이하 중저가 아파트 단지들은 매매가, 전세가, 월세가 모두가 폭등하는 ‘트리플 상승세’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습니다. 정부가 금리를 제외한 모든 시장 요인을 상승 방향으로 지지해 버렸으니 이 위험천만한 가격 급등세는 한층 더 가속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 불안한 것은, 향후 반도체 산업의 대대적인 수출 특수로 인해 창출될 거대한 성과금과 유동성의 파도가 곧바로 부동산 시장으로 밀려올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한국 주식 시장의 불확실성을 뒤로하고 ‘보유 비용은 적고 자본 이득은 확실한’ 수도권 부동산으로 돈이 쏠리는 것은 불로소득의 높은 기대수익률이 존재하는 한 지극히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 미친 유동성의 파도를 막아낼 제방을 지금 쌓지 않는다면 수도권 집값은 돌이킬 수 없는 폭등의 길로 치달을 것입니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더 깊어지는 불신
그러나 정작 시장 과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대통령과 정부를 향한 국민적 신뢰 자체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통령께서 지난 8월 30일에 SNS를 통해 “망국적인 부동산 투기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탈출하겠다”,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는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세제를 조세정의 차원에서 반드시 시정하겠다”고 단언하셨습니다. 하지만 불과 이틀 만에 국무회의에서는 비거주 1주택 과세기준을 다시 원상태로 돌려놓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결연한 부동산 개혁 선언과 실제 행정부의 거듭된 세제 후퇴 결정이 단 이틀이라는 시차를 두고 극명하게 엇갈린 것입니다. 투기 근절을 향한 담대한 구호와 이를 스스로 뒤집는 정책 집행이 반복되면서, 시장과 시민들에게 전달되는 메시지는 정책적 의지가 아닌 심각한 언행불일치의 혼선뿐입니다.
국정 운영에서 국민의 ‘믿음’을 잃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은 없습니다. 정부가 아무리 강력한 구두 개입과 담화문으로 시장 안정을 외친다 한들, 실제 제도가 누더기 감세와 후퇴를 되풀이한다면 시장 참여자들은 더 이상 대통령의 말을 신뢰하지 않고 투기적 기대를 이어나가게 됩니다. 대통령 발언의 무게감과 정책 신뢰도가 이처럼 맥없이 무너져 내린다면, 향후 그 어떤 부동산 대책을 내놓더라도 시장의 냉소와 조롱을 피할 수 없으며 결국 국정 동력 전체가 무너지는 치명적인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대책의 원점 재검토와 부동산에 억강부약을 적용해야 할 이유
그러니 대통령님, 여기서 돌이켜야 합니다. 8·3 세제개편안과 8·13 부동산 대책을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해 주십시오. 지금이라도 정책적 혼선을 겸허히 성찰하고, 선언에 그쳤던 불로소득 차단의 의지를 구체적인 제도와 정책으로 다시 입증해 주셔야 합니다. 부동산 영역에 대통령께서 늘 강조해 오신 ‘억강부약’을 가장 시급하고 과감하게 적용하겠다고 결단하셔야 합니다.
제가 일하는 연구소가 자체 추산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부동산 불로소득은 매년 300조 원을 훌쩍 넘어서고 있습니다. 피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와 청년들이 평생을 바쳐도 모으기 힘든 거대한 부가 오직 ‘부동산 보유’만으로 특정 계층에게 불로소득의 형태로 흘러 들어가고 있습니다. 노력과 생산성에 따른 정당한 보상이 아닌 부동산 소유 여부에 따라 삶의 궤적이 갈리는 이 미친 현실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뿌리부터 흔드는 부당한 양극화와 불평등의 가장 핵심적인 주범입니다.
부동산에 억강부약을 적용하여 불로소득을 차단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지속가능성은 심각하게 위협받게 됩니다. 땀보다 땅이 대접받는 사회에서 청년들은 미래를 포기한 채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고 있으며, 미친 집값과 주거 불안은 세계 최저 수준의 저출생이라는 가혹한 사회적 비용으로 되돌아오고 있습니다. 또한 산업에 쓰여야 할 유동성이 부동산이라는 비생산적인 자산에 동결되면서 국가 성장 동력 자체를 갉아먹고 있습니다. 강자의 부동산 불로소득 이익을 억제하는 ‘억강(抑强)’ 없이 약자의 주거권과 생존권을 지키는 ‘부약(扶弱)’은 불가능하며 이는 국가적 소멸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배수진입니다.
나아가 부동산 억강부약의 실현 없이는 대통령님께서 추진하시는 ‘지방화 시대’ 역시 결코 열 수 없습니다. 수도권 부동산의 천문학적인 기대수익률을 그대로 방치한 채 추진하는 균형발전 정책은 자금과 인구의 수도권 쏠림이라는 거대한 블랙홀을 당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서울 및 수도권으로 쏠리는 부동산 불로소득의 고리를 끊어내고 종합적 대책을 통해 전국 부동산의 기대수익률을 낮춰야만 비로소 지방으로 자원이 선순환하며 지역이 살아나는 진짜 균형발전이 시작될 것입니다. 부동산 대개혁을 통한 억강부약의 결단만이 위기의 대한민국을 다시 세우는 길입니다.
대통령님, 정말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동산 대개혁의 골든타임은 집권 초반기인 바로 ‘올해’가 마지막이며 이 시기를 넘기면 개혁의 동력은 급격히 상실되어 정권과 나라 전체가 거대한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과거에서 배워야 할 엄중한 교훈은 분명합니다. 참여정부가 준 교훈은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지 말고 기득권의 저항을 정면 돌파할 수 있는 부동산 정책을 집권 초기에 전격 단행했어야 한다는 점이며, 문재인 정부가 남긴 교훈은 근본적 처방 없이 땜질식 핀셋 규제와 계통도 체계도 없는 두더지 잡기식 대책을 남발하는 우를 결코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는 미세 조정을 버리고 세 가지 근본 축을 세우는 대개혁에 나서야 합니다. 첫째, 보유세의 보편적 강화를 통해 부동산 불로소득을 원천 차단하고 환수하는 세제 개혁을 완성하고, 둘째, 토지임대료 현실화를 통해 초기 입주 시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내내 가격의 부담 가능성이 유지되는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을 대량 공급하며, 셋째, 청년과 서민의 주거비를 크게 낮출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을 흔들림 없이 꾸준히 공급하는 일관되고 체계적인 정공법만이 집권 초기의 개혁 성패를 가르는 유일한 해법입니다.
조세저항 극복 방법
보유세의 보편적 강화를 말하면 조세저항을 걱정하실 줄 압니다. 그러나 조세저항은 ‘기본소득과의 결합’으로 완벽히 정면 돌파할 수 있습니다. 보유세 인상으로 늘어난 세액을 국민 모두에게 기본소득으로 나누어주면, 부담이 전혀 없고 혜택만 있는 무주택자는 물론이거니와 거의 대부분의 유주택자도 부담보다 혜택이 많은 순수혜가구가 되기 때문에 가구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전체 가구의 90~95%가 순수혜가구가 됩니다.
또 다른 방법은 늘어난 세수를 청년과 신혼부부를 위한 양질의 공공임대주택 공급에 전면 투입하는 방안입니다. 이는 집값 폭등의 최대 피해자인 2030 세대에게 실질적인 주거 사다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는 5060 부모 세대의 마음을 움직여 보유세 인상을 ‘징벌’이 아닌 ‘미래 세대를 위한 생산적 투자’로 승화시킵니다.
마지막 방법은 보유세 순증분만큼 서민들의 일상 소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부가가치세를 즉시 인하해 주는 것입니다. 모든 국민이 생필품 물가 인하 혜택을 즉각 체감하게 됨으로써, 정부의 조세 개혁이 세수 확보용 증세가 아니라 국민의 삶을 보살피는 대담한 세제 재편임을 입증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보편적 보유세 강화라는 단단한 기초공사가 전제된다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일반세율로 전환해 거래의 물꼬를 터주고 토지거래허가제도 과감히 해제하는 거대한 ‘빅딜’도 가능해집니다. ‘거주 1주택자 보호’라는 온정주의적 미세 조정이 오히려 ‘똘똘한 한 채’ 쏠림과 전세난이라는 부작용을 낳았던 지난 십수 년의 오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됩니다. 미세 조정을 버리고 보편적 원칙으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부동산 대개혁에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시길
대통령님, 눈앞의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오직 나라의 미래만을 바라보아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대통령께서는 충분히 그 결단을 내리실 수 있는 분이라 믿습니다. 아니, 믿고 싶습니다. 만약 대통령님마저도 부동산 대개혁에 실패하면, 다시 말해서 지금처럼 담대한 발언과 발표되는 정책 간의 엄청난 괴리를 바로잡지 않으면 나라의 앞날은 참으로 캄캄합니다. 참여정부는 훌륭한 정책을 입법화했음에도 결과적으로 부동산에 실패하여 이명박 정부에게 정권이 넘어갔고, 문재인 정부는 계통과 체계 없이 두더지 잡기식으로 부동산 정책을 남발하다가 집값이 폭등하여 ‘폭군’ 윤석열에게 정권이 넘어가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고생을 했습니까. 그런데 이재명 정부마저 부동산 대전환에 또다시 실패한다면 그 뒤에 찾아올 국가적 재앙과 국민의 고통은 감당하기조차 어려울 것입니다.
대통령님, 마지막으로 간곡히 호소합니다. 민생의 근간인 부동산에서 근본적인 개혁을 이뤄내는 것, 이 나라를 ‘부동산투기 공화국’이라는 오명에서 건져내어 부동산으로 인한 불평등을 크게 줄이고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주거 불안으로부터의 자유를 선물하는 것이야말로 대통령께서 약속하신 “진짜 대한민국”의 가장 핵심적인 알맹이라는 점을 부디 꼭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