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부자 감세’ 화신인가?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대통령실 성태윤 정책실장이 방송에 나와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사실상 폐지해야 한다고 기염(?)을 토했다. 종부세에 대해 몰이해와 왜곡으로 점철된 정 실장의 인식도 무참하지만 감세를 무슨 대단한 신념이라도 되는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재벌과 부자 감세가 경제 정책의 거의 전부인 윤석열 정부와 감세가 신념인 듯 보이는 성 실장은 잘 어울린다. 분명한 건 감세 정책은 신자유주의주의자들이 만들어낸 이데로올기이며 그것도 완전히 파산한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이다. 종부세를 비롯해 증세 논의를 치열하게 해도 부족할 판에 감세 드라이브에 혈안인 정부를 둔 대한민국의 신세가 처량하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해외 직접구매(직구) 논란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2024.5.20. 연합뉴스
종부세를 사실상 폐지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인 정책실장
대통령실 성태윤 정책실장은 16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종부세에 대해 “기본적으로 주택 가격 안정 효과는 미미한 반면 세금 부담이 임차인에게 전가되는 요소가 상당히 있어 폐지 내지는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 실장은 “종부세는 지방 정부의 재원 목적으로 활용되는데 사실 재산세가 해당 기능을 담당하고 있어 재산세로 통합 관리하는 게 이중과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며 “종부세 제도를 폐지하고 필요시 재산세에 일부 흡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성 실장은 “고가 1주택보다 저가 다주택을 가진 분들의 세 부담이 크다는 게 실제로 문제”라며 다만 “종부세를 당장 전면 폐지하면 세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초고가 1주택자나 보유 주택 가액의 총합이 고액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종부세를 걷고, 일반적 주택 보유자와 보유주택 가액 총합이 아주 높지 않은 다주택자에 대한 종부세는 없애야 한다”고 발언했다. ‘종부세는 폐지가 맞지만 전면 폐지를 하면 세수 결손 문제가 생기니 사실상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 성 실장의 생각이다.
성 실장은 다주택자에 대한 애호의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다주택자를 적대시하기도 하는데, 저가 다주택자는 전월세 공급자이기도 해서 이들에 대한 세 부담이 지나치게 높아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오히려 전월세 공급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종부세에 노골적인 적대감을 보인 성 실장이 상속세를 그대로 둘 리 없다. 그는 “상속세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낮추고, 그 다음으로 유산취득세·자본이득세 형태로 바꾸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러한 세 부담 완화 개편이 재정건전성 기조와 배치되지 않느냐는 지적에 성 실장은 “일반적인 세금이 아니라 경제활동의 왜곡은 크면서 세수 효과는 크지 않은 종부세, 상속세 등을 중심으로 타깃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성 실장이 방송 인터뷰에서 언급한 내용은 확정된 것이 아니며 현재 다양한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종부세의 주택 가격 안정 효과를 인정한 성태윤 실장
성태윤 실장의 발언을 읽는 시간들은 참혹했다. 아무리 윤석열 정부가 무능과 무책임의 표본이라고 해도 정책실장쯤 되는 사람이 종부세 등에 대해 저토록 무지할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해서다. 우선 성 실장은 종부세에 대해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 성 실장은 종부세가 “기본적으로 주택 가격 안정 효과는 미미한 반면 세 부담이 임차인에게 전가되는 요소가 상당히 있어 폐지 내지는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먼저 성 실장은 종부세가 주택 가격 안정 효과가 미미하다고 말한다. 성 실장에 따르더라도 종부세가 주택 가격 안정 효과는 미미하게나마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종부세를 강화해 주택 가격 안정 효과를 높이면 될 일이다. 윤석열 정부가 온갖 패악을 부려 누더기가 된 종부세를 문재인 정부 하반기 수준으로만 높여도 주택가격 안정 효과는 배가될 것이다.
아래 그래프들을 보면 문재인 정부가 온갖 욕을 먹어가면서 강화한 종부세를 윤석열 정부가 얼마나 만신창이로 만들었는지를 극명하게 알 수 있다. 윤 정부는 종부세를 말 그대로 초토화했다.
연도별 종부세 납세 현황과 분위별 세액 점유율. 연합뉴스
개인 주택분 종부세 납세 현황. 연합뉴스
이중과세 운운하며 종부세를 폐지하거나 재산세에 흡수해야 한다는 성 실장 발언도 어처구니 없다. 이미 헌법재판소는 종부세가 이중과세가 아니라고 수 차례 결정한 바 있다. 성 실장은 헌재 결정도 무시하는 것인가? 만약 종부세를 지방에 교부하는 것보다 더 좋은 사용처가 있다면 종부세를 그 용처에 맞게 사용하면 그 뿐이다. 예컨대 종부세를 재원으로 전국민 기본소득을 실험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성 실장의 발언 중 유일하게 일고할 가치가 있는 건 ‘보유주택 가액의 총합이 고액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종부세를 내게 하자’는 대목이다. 물론 성 실장은 그나마 누더기가 된 다주택자들의 세 부담을 더 낮춰 줄 욕심으로 저런 발언을 했겠지만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이 이를 받아 발전적인 대안을 낼 수도 있을 것이다. 1주택자건 100주택자건 보유채수와는 상관없이 보유주택 가액의 총합을 과세기준으로 하면 시가 40억짜리 강남 아파트를 보유한 1주택자와 5억짜리 저가 아파트 세 채를 보유한 다주택자 사이의 형평성 문제도 해소될 것이다.
임차인들이 걱정되면 공공임대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해야
성 실장은 세금 부담이 임차인에게 전가된다고 하면서 임차인 걱정(?)을 해 주고 있다. 성 실장의 주장과는 달리 종부세는 임차인에게 전가가 쉽지 않은 세금이다. 경제학 교과서에 보면 토지세는 임차인 등에게 전가가 불가능한 반면 건물에 부과하는 보유세는 일부 전가가 가능하다고 나온다. 종부세는 토지에 부과되는 보유세와 건물에 부과되는 보유세가 섞여 있는 세금인만큼 이론적으로 보면 미미하게나마 전가가 가능하다. 하지만 임대료는 여러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종부세 세부담 전가로 결정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예컨대 종부세가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약했던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시기 전세난이 극심했다. 세 부담 전가 가능성을 운운하며 종부세를 비판하는 건 졸렬하기 이를 데 없는데, 이는 가격을 임대인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는 비현실적 가정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저가 다주택자는 전월세 공급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들을 적대시해 세 부담을 높이는 건 오히려 전월세 공급을 줄인다’는 성 실장의 발언에는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다. 도대체 정부는 무얼하고 전월세 공급을 다주택자에게 맡기며 그들의 자비를 구걸하는 것인가? 세금 부담이 는다고 전월세 공급이 그리 줄지도 않겠지만, 정부가 다양한 유형의 공공임대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해 임대차시장을 안정시키면 된다.
성 실장이 왜 정부의 존재 이유와 임무를 방기하면서 다주택자 타령을 하는지 정녕 모르겠다. 주권자의 세금으로 녹봉을 받으면 일을 해야 마땅한데 성 실장은 다주택자 걱정으로만 가득하니 이 노릇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참고로 공공임대주택에 적개심을 보인 것도,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삭감하고 계획된 공급물량을 이행하지 않는 것도 전부 윤석열 대통령이다.
세곡동 공공임대주택단지.
감세 타령은 그만, 증세 논의가 필요한 시점
성태윤 실장은 재벌과 부자감세가 신앙인 윤석열 정부와 더 할 나위 없이 호흡이 잘 맞는 사람으로 보인다. 종부세와 상속세를 원수 보듯 하는 성 실장을 보며 확실히 알겠다. 그런데 종부세와 상속세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지대 혹은 불로소득에 부과되는 세금이란 사실이다. 주지하다시피 지대와 불로소득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정의와 효율을 결정적으로 저해하는 암종이다.
종부세 폐지와 상속세 형해화에 앞장선 성 실장은 결국 지대 추구와 불로소득을 권장하며 대한민국의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는 중이다. 성 실장이 명함도 내밀지 못할 천재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상속세를 비롯한 세금의 중과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21세기 자본’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드높인 피케티는 2020년 2월 신작 ‘자본과 이데올로기'(Capital And Ideology) 영문판 출간을 기념해 모교 런던정경대학(LSE)에서 열린 대중 강연에서 성 실장이 새겨들으면 좋을 말을 많이 했다. 피케티는 “1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국가가 세금을 올렸다”면서 “특히 미국은 대공황 이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최상위 소득세율을 아주 아주 높게(very very high) 책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1930~1980년대 미국 평균 최고 소득세율이 80%가 넘었는데 이 시기 미국 경제 성장률과 생산성 역시 매우 높았다”면서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결코 높은 세율이 미국의 자본주의를 망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피케티는 “물론 단순히 세금 때문에 성장률이 올라갔다는 것이 아니라 재정이 견고해지면서 공공부문과 인프라, 교육에 대한 투자가 늘었고 결국 이 모든 것이 경제적 번영을 가져오는 데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합리적인 선에서 사유재산을 가져야 하지만 재산이 과도하게 집중돼서는 안 된다”면서 “부의 초집중(hyper-concentration)을 막기 위해서는 여러 광범위한 그룹의 폭넓은 경제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2020년 2월 6일 영국의 런던 정치경제대학(LSE)에서 열린 자신의 저서 ‘자본과 이데올로기’ 영문판 출간 기념 강연에서 청중의 질문을 듣고 있다. 2020.2.6. 연합뉴스
피케티는 자신의 신간에서 최대 90%의 부유세 및 상속세율을 통해 부를 거둬들인 뒤, 25세 청년에게 12만 유로(약 1억6천만원)의 재정적 지원을 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피케티는 부유세와 상속세를 재원으로 한 일종의 기본자산제를 제안한 것이다.
감세가 재정의 파탄, 공공부문과 인프라 투자 축소, 복지의 축소, 양극화 심화, 경제침체 야기 등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재앙을 초래한다는 사실은 대한민국을 포함해 이미 역사적으로 검증됐다. 감세가 투자와 소비를 촉진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건 신자유주의자들이 만든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지금 대한민국에 절실히 필요한 건 건설적 증세 논의다. 감세 유령은 이 땅을 떠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