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칼럼] 태영건설에 4000억 지원 ‘밑 빠진 독, 물 붓기’ 아닌가?



태영건설에 4000억 지원 ‘밑 빠진 독, 물 붓기’ 아닌가?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워크아웃 중인 태영건설에 대주단이 말 그대로 돈을 쏟아붓고 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 형식으로 4000억 원을 전액 지원하기로 했는가 하면, 태영건설이 마곡지구에서 진행 중인 부동산PF 사업장에도 3700억 원을 대출해 주기로 결정했다. 

반면 태영건설은 진행 중인 부동산PF 사업장들의 처리 방안도 제대로 제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자산매각을 통한 유동성 확보도 시장 상황 악화로 여의찮아 보인다. 자칫 태영건설에 쏟아붓는 대주단의 추가 자금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지나 않을까 우려되는 상태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을 통해 건설사 살리기에는 올인하면서도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피맺힌 호소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윤석열 정부의 이중성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산업은행의 지원은 지난 23일 있었던 제2차 채권단 회의에서 결정됐다. 채권단은  채권액 기준 75% 이상이 신규 자금 지원 등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규 자금 지원안은 태영건설에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을 열어줘 협력 업체 공사 대금 지급 등 필요한 운영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손실이 발생할 경우 금융 채권자 비율대로 손실을 분담하기로 했는데, 분담 비율은 산업은행이 49.6%로 가장 높고, 하나은행 16.4%, NH농협은행 13.2%, 우리은행 11.31, 신한은행 6.29%, KB국민은행 3.14% 순이다. 금리는 연 4.6%이며 대출기한은 오는 5월 30일까지다.

대주단은 태영건설이 추진 중인 마곡지구 부동산PF 사업장에도 3700억 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대주단의 신규 사업 지원은 이번이 처음으로 마곡 CP4 사업장은 태영건설의 부동산 PF 사업장 중 최대 규모다. 대주단은 이 같은 내용의 처리방안을 23일 산은에 제출했다. 이 사업은 마곡 CP4구역에 지하 7층~지상 11층, 연면적 약 46만㎡ 규모의 복합 시설 ‘원웨스트 서울’을 짓는 사업으로, 준공을 위해서는 추가 자금 3700억 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공정률 70% 시점부터 건설사 자체자금으로 공사를 해야 하지만,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으로 자금 투입이 어려워졌다.

교보생명, 신한은행, 산업은행 등 대주단은 해당 사업장의 분양 리스크가 적고 사업성이 보장된 만큼 추가 자금을 투입하자는 데는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3700억 원을 어떤 비율로 분담할 것인지에 대해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지역 단위 신협이 다수 포함된 탓에 추가 출자 결정이 미뤄지자 신한은행이 참여하지 못하는 대주단 몫을 부담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추가 자금에 대한 금리 수준 역시 대주단이 시행사 측에 기존에 제시한 것보다 낮아졌다. 대주단은 당초 롯데건설이 조성하는 PF 펀드의 금리를 활용해 8.5%에 수수료 1.0%를 추가한 9.5%를 금리로 제시했으나, 태영건설이 과도하다며 반발했다. 이에 대주단이 23일 산은에 제출한 처리방안에는 금리 7.5%에 수수료 1.0%를 추가한 8.5%로 조건을 수정했다. 태영건설측의 반발이 먹혀 금리가 낮춰졌다.


23일 태영건설의 작업자 임금체불 문제로 골조 공정이 중단된 서울 중랑구 상봉동 청년주택 개발사업 건설 현장의 모습. 2024.1.23. 연합뉴스
23일 태영건설의 작업자 임금체불 문제로 골조 공정이 중단된 서울 중랑구 상봉동 청년주택 개발사업 건설 현장의 모습. 2024.1.23. 연합뉴스



태영건설은 PF사업장 처리방안도 제대로 제출 못해

대주단이 태영건설에 돈을 쏟아붓는 것과는 달리 태영건설은 진행 중인 부동산PF처리방안도 제대로 제출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태영건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 59곳의 처리방안 제출 마감 시한이 오는 26일로 다가왔지만, 사업장마다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율하지 못해 아직 절반도 방안을 제출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23일까지 태영건설과 관련한 PF 사업장 59곳 중 10여곳의 대주단이 산업은행에 사업장 처리방안을 제출했다. 제출이 통상 마감일에 몰리는 경향을 고려하면 26일 상당수 사업장이 방안을 제출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때까지 처리방안을 확정하지 못하는 사업장도 다수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사업장 사정에 따라 시공사를 유지하고 사업을 이어갈지, 대체 시공사를 선정할지, 사업을 이어간다면 추가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지, 브릿지론 사업장 가운데 몇개나 경·공매에 넘어갈지, 채권자 사이의 이해관계 상충문제는 어떻게 정리할지 등 문제가 산적해 있다. 앞으로도 문제해결까지는 첩첩산중이다.

 인천에서 2천채가 넘는 주택을 보유하며 전세 사기를 벌인 이른바 '건축왕'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세상을 등진 피해자의 1주기를 앞두고 24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열린 추모제에서 참가자들이 희생자를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2024.2.24. 연합뉴스
인천에서 2천채가 넘는 주택을 보유하며 전세 사기를 벌인 이른바 ‘건축왕’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세상을 등진 피해자의 1주기를 앞두고 24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열린 추모제에서 참가자들이 희생자를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2024.2.24. 연합뉴스
 

건설사 살리기엔 올인하고 전세사기 피해자들 피눈물은 외면하는 윤 정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을 필두로 대주단이 태영건설 살리기에 올인하는 가운데 태영건설의 자산 매각을 통한 부채상환은 그리 신통치 않아 보인다. 골프장 두 곳은 매각이 어려워 유동화를 통해 고작 1400억 원을 확보했을 뿐이며, 알짜 계열사로 불리는 에코비트의 경우 태영이 생각하는 매각대금 3조 원에 시장은 고개를 흔들고 있다. 

물론 대주단이 태영그룹 대주주들의 주식 일부를 담보로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주식가치는 폭락하기 일쑤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닥 미덥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보면 산업은행 등을 포함한 대주단의 태영건설 살리기가 자칫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수도 있다. 대주단의 부실 규모가 훨씬 커질 수 있단 뜻이다.

한편 태영건설 살리기에 진심인 윤석열 정부의 태도는 전세사기 피해로 전재산을 잃은 2030들에 대한 냉담함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거칠게 계산해서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구제할 수 있는 자금은 대략 4조 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설사 전부 매몰되어도 4조 원이면 2030이 압도적 다수인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희망을 선사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윤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빚을 더 내서 경매 나온 집을 경락 받으라고 종용할 뿐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실효적으로 돕는 데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윤석열 정부에게 국민은 건설사와 금융사뿐인 듯 싶다.  


 

<시민언론 민들레 2024년 2월 26일>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