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집값을 안정시켜야 사상 최고 수준인 부동산 중심의 자산불평등이 완화되고 소비 및 출산이 증가할 수 있다는 민간연구소의 보고서가 나왔다. 때마침 이재명 정부가 부동산불로소득공화국 혁파를 위해 드라이브를 거는 가운데 서울 상위 20%에 해당하는 고가 아파트의 가격 상승률이 전월 대비 급락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만간 하락전환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는 마당이다. 고가 아파트가 무너지면 그 밑단에 있는 아파트들은 줄줄이 가격하락 압력을 받을 것이다. 집값 안정의 청신호가 아닐 수 없다.
유의미한 함의가 담긴 집값 보고서 낸 신한금융
신한금융지주 미래전략연구소는 8일 공개한 ‘집값이 안정되면 달라질 것들:내수의 질적 전환과 금융의 역할’ 보고서에서 “자산 불평등의 중심에 부동산이 자리 잡은 현재 구조에서 부동산 가격 안정은 세대 간 후생 격차 완화, 소비 여력 회복, 청년층의 결혼·출산 여건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현재 순자산 상위 20%가 전체 순자산의 65%를 차지하고, 하위 40%의 점유율은 4.8%에 불과하다. 가구 자산의 약 70%는 부동산으로, 결국 부동산 가격 상승이 계층 간 자산 격차를 수년 치 소득 차이 이상으로 벌려놨다는 게 연구소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순자산 지니계수(불평등 지수·0에 가까울수록 분배 균등 상태)는 지난해 기준 0.625로 통계 집계 이래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소비와 출산을 증가시키고 싶으면 집값을 잡아야
이런 상태에서 집값 안정으로 주거비 부담이 줄면, 청년·중년층의 소비 반등 효과가 가장 클 것으로 기대됐다. 현재 25∼39세에서 주택가격 상승에 따른 소비 위축 정도가 가장 심하다는 통계가 근거로 인용됐다.
아울러 주거비 안정은 청년층의 결혼과 출산 실행 장벽을 낮추고, 주거비 부담 탓에 지금까지 포기했던 교육·자기 계발, 전직을 위한 투자 등도 늘릴 것으로 예상됐다.
아울러 연구소는 “금융 수요 측면에서는 주거비가 줄어든 만큼 여유 자금이 생기는 청년·신혼부부 세대에서 시드머니(종잣돈) 마련형 적금, 청년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적립식 펀드 등 자산형성 초기 단계 상품의 수요가 확대될 것”이라며 “집값이 안정되면 ‘더 오르기 전에 안 판다’는 보유 유인이 약해져 고령층에서 집 크기를 줄이거나 주택연금(역모기지)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고가 아파트값 상승세 위축…1년간 월평균 상승치의 10분의 1토막
8일 민간 통계인 KB부동산 조사에 따르면 2월 서울 아파트 5분위 매매 평균가격은 34억 7120만원으로 1월 대비 527만원 올랐다.
5분위는 주택을 가격대에 따라 5등분해 분위별 평균가격을 산출한 통계로, 1분위는 가격 하위 20% 저가 주택, 5분위는 상위 20% 고가 주택에 해당한다.
서울 5분위 가격대 아파트는 대부분 상급지인 강남3구와 용산구에 몰려 있다.
KB 통계상 서울 5분위 평균 가격은 2024년 3월부터 줄곧 상승했다.
전월 대비 수천만원대 상승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현 정부 출범을 전후해 시장이 과열됐던 작년 6월에는 전월보다 무려 1억 3477만원 올라 한 달새 억대 상승폭을 보이기도 했다.
이와 비교하면 전월 대비 가격 상승이 1000만원을 밑돈 올 2월 통계는 위축세가 뚜렷한 수치다.
직전월인 1월의 전월 대비 상승액(2744만원)과 비교해도 확연히 낮고, 작년 2월부터 올 2월까지 5분위 가격 월평균 상승치(5996만원)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해당 통계는 조사기준일이 2월9일로, 2월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 둔화 양상을 모두 아우르지는 않았으나 이재명 대통령이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가 없음을 확인한 1월23일 이후 상황이 일부 반영됐다.

상위 20%아파트들 하락전환하면 시장 안정은 가속화 돼
한편 3월 통계에는 위축 국면이 한층 더 뚜렷해진 최근 상황까지 반영되므로 5분위 평균가격이 전월 대비 하락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
KB 통계 기준으로 5분위 가격 하락 전환은 고금리와 대출규제 영향으로 주택 매수심리가 크게 위축된 2024년 2월 이후 처음이다.
앞서 정부는 오는 5월9일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를 종료하되 임차인이 있는 경우 등을 고려한 보완책을 내놓았고, 이어 투기·투자용으로 의심되는 비거주 1주택에 대한 규제도 검토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 공인 통계인 한국부동산원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 기준으로는 서울 강남3구와 용산구 아파트 매매가격이 최근 2주 연속 하락했고, KB 통계로도 지난주 강남구 가격이 하락 전환했다.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 전 주택을 처분하려는 다주택자들이 호가를 낮춰 내놓은 급매물과 더불어, 향후 보유세 개편 등으로 세금 부담이 커질 가능성을 우려한 고가 31주택자들의 차익실현 매물이 더해져 이들 지역의 가격을 끌어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상급지에 고가 주택을 보유했지만 은퇴 후 별다른 소득원이 없어 향후 보유세가 오르면 세금 부담이 커지는 고령 1주택자, 정부의 추가 규제 대상으로 최근 계속 언급되는 비거주 1주택자들이 집을 처분하려는 움직임도 이런 흐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의 아파트 시장은 강남 3구를 최정점에 놓고 엄격한 위계를 형성하고 있다. 상위 20%에 해당하는 강남3구 등의 집값이 하락세로 전환하면 그 밑단에 있는 아파트들의 하락세는 더욱 가팔라질 수 있다. 부동산 시장 안정에 이보다 좋은 청신호도 드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