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위험천만한 ‘선제적 금리 인하론’




윤석열 정부의 위험천만한 ‘선제적 금리 인하론’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윤석열 정부와 여당이 기준금리를 빨리 인하하라며 한국은행을 압박 중이다. 통화정책은 한국은행의 고유 업무로, 한국은행이 독립적으로 결정해야 할 영역이다. 정부와 여당이 그에 대해 가타부타하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 더욱이 지금은 물가가 어디로 튈지 장담할 수 없는 국면이다. 환율도 위태롭기만 하다. 이런 상황에 기준금리를 섣불리 내렸다가 돌이키기 힘든 파국적 사태를 맞을 수도 있다. 윤석열 정부와 여당이 기준금리 인하에 혈안인 건 무엇보다 부동산 가격 상승을 위한 유동성 공급 성격이 짙다. 국민경제를 수렁으로 몰아넣으면서까지 부동산 경기 부양에 올인 중인 윤석열 정부를 보니 암담할 따름이다.


정부와 여당의 전방위적 기준금리 인하 압박

22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 민생경제안정 특별위원회는 이달 27일 개최하는 회의에서 한은 부총재를 참석시켜 기준금리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국회 차원이 아닌 여당에서 한은 고위층을 부르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에 앞서 황우여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17일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당과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언급했다.

여당뿐 아니다. 대통령실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17일 한 방송에 출연해 근원물가가 2%대라는 점을 언급하며 “상당부문 금리 인하가 가능한 환경으로 바뀌어 통화 정책을 유연하게 가져갈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며 “다른 국가도 금리를 인하하는 상황”이라며 한국은행을 압박했다.

심지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내수 진작을 위한 선제적 금리 인하를 주장하는 보고서를 발간해 거들고 있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지난달 근원물가 상승률(2.2%)이 물가안정목표(2.0%)에 근접한 만큼 통화정책 긴축 정도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국은행은 독립성 침해를 근심하며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총재는 지난 18일 물가설명회 간담회에서 “정책실장 뿐만 아니라 어느 전문가라도 의견을 주면 청취하는 것이 한은의 임무”라면서 “금융통화위원들이 독립적으로 결정할 것”이라고 논란을 피해갔다. 그러면서 금리 인하에 신중해야 할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 총재는 “물가가 목표 수준으로 수렴해야 했다고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면서 “7월 통화정책방향회의까지 기다려야 하고 데이터를 조금 더 봐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시장에선 이미 한은이 8월이 가기 전에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득세 중이다. 그동안 이창용 한국은행이 보인 행보를 보면 기재부의 남대문 출장소라는 세간의 평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가와 환율을 볼 때 섣부른 금리인하는 재앙적 상황을 초래할 수도

윤석열 정부와 여당이 기준금리 인하에 목을 매는 이유는 많다. 부동산PF부실사태, 집값 떠받치기, 한계가계와 한계기업들의 금리 부담 등등의 이유로 정부여당은 금리인하에 혈안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섣부른 기준금리 인하가 재앙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물가와 환율 상황이 심각한 까닭이다. 물론 소비자물가는 지난달 2.7%로 두 달 연속 2%대를 기록 중이고 농산물·석유류 제외 근원물가 상승률은 2%에 그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방식의 근원물가 지표인 식료품·에너지 제외 지수는 2.2% 상승을 기록했다. 


언뜻 보면 물가가 잡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도처에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당장 수개월 후 소비자물가에 반영되는 생산자물가가 지속적인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생산자 물가는 전월 대비 6개월, 전년 동월 대비로는 10개월째 연속 상승했다. 특히 계절성이 반영되는 전년 동월비 상승률이 갈수록 증가 폭이 커지고 있어 불안한 변수가 되고 있다.

시민들이 체감하는 생활물가도 2%대로 내려온 소비자물가상승률과는 아득한 이격이 있다. 한국은행이 주요국과의 생활물가 비교를 위해 영국 경제 분석기관 EIU 통계를 인용했는데, 이 통계는 지난해 나라별 주요 도시 1개 물가를 기준으로 한다. 한국은 서울 물가 기준이다. 이에 따르면 한국의 의식주(의류·신발·식료품·월세) 물가는 OECD 평균(100)보다 무려 55% 높았다. 품목별로는 의류·신발, 식료품, 주거비 물가 수준이 각각 OECD 평균을 61%, 56%, 23% 상회했다.

세부 품목으로는 사과(OECD 평균 100 기준 279)와 돼지고기(212), 감자(208), 티셔츠(213), 남자 정장(212), 골프장 이용료(242) 등이 OECD 평균의 2배 이상이었다. 오렌지(181)와 소고기(176), 원피스(186)도 2배에 육박했다.

OECD 국가 중에 통계가 없거나 시계열 자료가 부족해 비교가 어려운 나라를 뺀 33개국의 순위에서 한국의 생활필수품 물가는 대부분 최상위권이었다. 사과·티셔츠가 1위, 오렌지·감자·골프장 이용료가 2위, 소고기·남자 정장은 3위, 바나나·원피스·오이가 4위를 차지했다.

문제는 농산물 등 생필품의 생산과 유통구조를 단기간에 개선하기 힘들어 시간이 갈수록 OECD 평균과 비교해 우리나라 의식주 필수 생활물가가 더 높아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990년 한국 식료품 물가 수준은 OECD 평균의 1.2 배에 그쳤다. 그러나 지난해 1.6 배로 격차가 더 벌어졌다. 같은 기간 공공요금 수준은 평균의 0.9 배에서 0.7 배로 떨어진 것과 대조된다. 이런 흐름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역사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건 물가는 잡을 때 확실히 잡아야지 어설프게 잡았다간 상상하기 힘든 대가를 치른다는 사실이다. 선제적 금리인하라는 미명의 기준금리 인하가 자칫 인플레이션의 부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환율은 더 심각하다. 원달러 환율은 1390원 언저리에서 배회 중인데, 이는 외환위기 때를 제외하곤 찾아보기 힘든 수준의 환율이다. 환율은 그 나라의 경제체력이 모두 응집된 지표다. 원화가치가 폭락한다는 건 대한민국의 경제체력이 무너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거기에 더해 미 연준도 삼가고 있는 기준금리 인하를 한국은행이 먼저 단행한다면 환율이 어디로 움직일지 지금부터 두렵다.


화전민 근성으로 무장한 윤석열 정부

윤석열 정부가 경제를 운용하는 걸 보고 있으면 화전민(火田民)이 연상된다. 화전민은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만 생각하고 산이나 숲을 불태워 그 자리에 농사를 짓고 소출을 취한다. 화전의 대상은 단기간에 지력을 잃고 초토로 변한다.

정부와 여당이 집값을 떠받치고 건설사를 구하기 위해 물가와 환율까지 희생할 결심을 하는 것이 화전민의 심성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윤석열 정부는 정해진 임기를 끝낼 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초토화시킨 국민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선 무수한 피땀과 다대한 고통과 엄청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뉴스엠 2024년 6월 25일>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