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칼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김은혜의 부적절한 만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김은혜의 부적절한 만남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김은혜 전 대통령실 홍보수석이자 현 성남 분당을 국민의힘 총선 후보를 만나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선거라는 극히 민감한 시기에, 그것도 분당 등 1기 신도시 재건축 활성화를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민원을 들고 자신을 찾은 여당 후보를 고도의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이 요구되는 한은총재가 만났으니 비판이 쏟아지는 건 당연하다.

국민의힘 김은혜 후보는 이 총재와의 만남을 의기양양하게 홍보했다. 김 후보의 처신이 부적절함은 긴 말이 필요치 않을 것이나 비난 가능성이 한결 높은 건 이창용 총재다. 그는 중앙은행 수장으로서의 최소한의 윤리의식이 의심되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마치 윤석열 정부의 공무원인 듯 처신한 적이 드물지 않았다. 그는 충성의 대상이 윤석열 정부가 아닌 주권자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김은혜 국민의 힘 성남분당을 예비후보 페이스북 계정 캡처

김은혜 국민의 힘 성남분당을 예비후보 페이스북 계정 캡처

 

 


여당 국회의원 후보 김은혜와 한국은행 총재 이창용의 부적절한 만남

이창용 총재는 최근 경기 성남 분당을 지역 국민의힘 총선 후보인 김은혜 전 대통령실 홍보수석을 면담했다. 김 후보자는 지난 11일 페이스북에 이 총재를 만난 사진을 게재하고 ‘기준금리는 DOWN, 분당 재건축은 UP’이라는 문구를 삽입했다. 또한 김 후보는 포스터와 함께 올린 글에선 기준금리 인하를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1기 신도시 재건축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를 만났다”며 “(높아진 공사비를 해결하기 위한 해답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기준금리 결정을 위해 1기 신도시 재건축 상황을 포함해 전반적인 건설 경기를 고려해달라”며 “(이창용 총재에게) 반드시 금리인하를 해주셔야 한다고 건의했다”고 소개했다. 김 후보의 이런 민원에 대해 이 총재는 “통화신용정책을 통해 나라 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는 것은 한은에 주어진 의무”라는 원론적 답변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재와 김 후보의 만남은 만남자체와 타이밍과 내용 모두에서 부적절하기 이를 데 없으며 비난 받아 마땅하다. 우선 고도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요구받는 중앙은행의 수장이, 선거라는 극히 예민한 시기에, 여당의 국회의원 후보를 만난 것 자체가 납득불가다. 게다가 김 후보는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 홍보수석 등을 역임한 윤 정부의 실세로 알려진 사람이다.

설사 김은혜 후보가 면담을 요청했더라도 이 총재는 그 요청을 단호히 거부하는 게 맞았다. 만난 후 나눈 이야기는 더 가관이다. 김 후보는 출마 선거구인 분당의 재건축을 용이하게 만들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엽기적인 민원을 들고 이 총재를 찾아갔다. 통화정책이란 것이 고작 재건축을 쉽게 만들기 위해 조변석개하는 것인가?

당장 한은노조가 김 후보와 이 총재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유희준 한은 노조위원장은 성명문을 통해 “특정 후보가 총선을 앞두고 본인의 선거운동에 한은을 선전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며 “선거운동에 한은을 이용하지 말라”고 밝혔다. 이어 노조는 “한은은 정부 기관과 달리 특별법에 의해 설립된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조직”이라며 “한은의 금리 결정은 국가 경제에 중장기적이며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 사항으로 특정 지역이나 그룹의 사사로운 사정과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고도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 요구되는 중앙은행 수장의 상식 밖 처신

이 총재가 중앙은행의 수장에 걸맞지 않는 처신을 보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경제부총리 등 정부 경제·금융 수장과 매주 정례적으로 만나 정책을 논의한다. 심지어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도 주기적으로 참석한다고 알려졌다. 전임 한국은행 총재들은 상상도 못한 행보를 이 총재는 거침없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행보가 한은 독립성에 악영향을 줄 수 있지 않냐는 지적에 대해 이 총재는 “한은이 정부를 만나서 정부에 영향을 준다는 생각은 안 하나, 정부의 독립성이 사라진다고 왜 거꾸로 안 물어보냐”고 반문했다 한다. 기재부와 한국은행 사이의 권력관계와 힘의 우열을 아는 사람들에게 이 총재의 위와 같은 발언은 실소를 자아낼 따름이다.

이 총재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한국은행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은 싸늘하다. 한은이 갤럽에 의뢰해 조사한 ‘2022년 정책수행 및 평판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보고서’를 보면 ‘독립성’에 대한 긍정 평가 비율은 고작 41.9%에 그쳤다. 주요 항목 중 소통 다음으로 점수가 나빴다. 도덕성과 전문성 등이 60% 이상 긍정 평가를 받는 데 비하면 점수가 나빠도 너무 나쁘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은행은 과거 ‘재무부의 남대문 출장소’라는 별칭을 듣곤했다. 주권자의 압도적 다수가 한국은행이 대한민국의 통화정책을 책임 진 최고기관으로서의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여긴 것이다. 사정이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한국은행은 기재부 모피아들의 집행위원회라는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게다가 마치 윤석열 정부의 부처 공무원처럼 처신하는 이 총재의 행보가 한국은행에 대한 주권자의 인식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기능 중이다. 이 총재 자신은 한국은행의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을 잘 지키고 있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이 총재 본인만의 생각이다. 한국은행을 포함한 국가기관의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은 자신들이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주권자들이 평가하는 것이다. 


이창용 총재는 윤석열 정부가 아닌 주권자에게 충성해야

이 총재가 취임한 이후 그에게 주어진 절체절명의 과제는 인플레이션 제압이었다. 주권자들은 이 총재에게 주권자들의 숨통을 매일처럼 조여오는 물가를 잡아줄 것을 명령했다. 그는 주권자들의 명령을 받들어 물가와의 전쟁에 결연히 나서야 했다. 이 총재가 물가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누구나 안다. 당장은 경제 전반을 위축시키고 경제 주체들에게 고통이 따르더라도 기준금리를 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 총재는 기준금리 동결을 줄곧 선호했다.

이 총재가 알쏭달쏭한 언사로 잇딴 기준금리 동결의 근거들을 제시했지만 눈 밝은 사람들은 이 총재의 연이은 기준금리 동결 결정이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 가격 떠받치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추정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죄다 하면서 부동산 가격 떠받치기에 올인하는 마당에 한국은행이 물가를 잡겠다며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윤석열 대통령이 뭐라 할 것인가?

이 총재는 ‘대한민국의 가계부채가 임계점을 넘었고, 부동산 가격도 거품이 있다’며 늘 탄식한다. 그러면서도 기준금리 인상은 하지 않는다. 또한 이 총재는 ‘디레버리징이 살 길이며 한국은행이 부동산 가격을 떠받치기 위해 통화정책을 사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호언한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지난해 특례보금자리론을 지원했고 올해는 금융중개지원대출 확대에 발 벗고 나섰다. 표리부동도 이런 표리부동이 없다. 

이제라도 이창용 한은총재는 충성의 대상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창용 총재는 윤석열 정부에게 충성할 것인지, 아니면 주권자에게 충성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시민언론 민들레 2024년 3월 19일> 원문보기